베네치아,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

2022년 4월 6일, 8일 차 기록

by Rhi hyun


낭만의 운하 도시에서 아침 일찍 날 깨워준 것은 모기의 날갯짓 소리였다. 전날 환기를 위해 잠깐 창문을 열어둔 사이 들어왔었다. 임시방편으로 과자 포장 종이를 접어서 모기채를 만들어 잡았다. 아침에만 네 마리를 잡았다.


도구적 인간


전날 사 온 빵과 치즈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밖으로 나갔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 운하를 따라서 걸었다. 건너편엔 베네치안 고딕을 포함한 이 도시 특유의 건물들이 차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운하가 끝나는 부분에 다다르니 물색이 한층 더 파래졌다.

벤치엔 주로 노인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고 건물 밖으로 늘어진 줄에는 빨래가 널려있기도 했다. 사람 사는 동네였다. 잠깐 벤치에 앉아 바다인지 호수인지를 멍하게 바라봤다.





다시 중심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전날 걸은 거리에 비해 건물들이 좀 더 빽빽하게 들어차고 층수도 더 많았다. 호텔 근처와 달리, 이 구역의 운하변에선 외벽의 회반죽과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건물들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색색의 조화로운 모습은 그대로였다. 몇몇 사진을 찍어 친한 후배들이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그중 한 명이 답했다.

‘오... 진짜 예쁘네요. 이런 데서 매일 살면 어떤 기분일까?’

‘이 모습을 매일 보면 특별한 게 평범해져 별 느낌이 안 날 거야...’라고 답하려다 멈칫했다. 굳이 흥을 깰 필요가 없었다.

‘그러게. 생각보다 평화롭고 여유로워. ’

적당히 맞춰 답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무심결에 들어간 이 한적한 주거 지역이 유대인 격리 구역을 의미하는 ‘게토(Ghetto)’의 원형 구역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여행자가 평화롭다 느꼈던 곳이 과거 주민들에겐 갇힌 공간이었다.


도망친 땅에서 다시 갇혔던 흔적



더 가자 조그만 캄포가 나왔다. 빨간 바탕에 기괴한 얼굴의 인면 사자가 그려진 깃발이 깃대에 걸려있었다. 산 마르코 사자 깃발이었다. 이 깃발을 돛대에 달고 베네치아 상인들은 몇백 년 간 지중해를 누볐고, 난 1년 간 대항해시대 속 바다를 누볐다. 감개가 일었다.

깃대 옆의 내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근처 기단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를 맞춰서 몇 번을 찍었다. 찍는 도중 두 노인 여성이 와서 근처 벤치에 앉아 혼자 애쓰는 내 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개의치 않고 만족할 샷이 나올 때까지 10분 넘게 찍었다.





전날 걸었던 중심가로 갔다. 조각 피자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은 뒤 근처 디저트 가게로 들어갔다. 과일 타르트 두 개를 집어 들고 직원에게 다가가 계산하려던 순간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직원이 내 쪽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Prima.’

내가 먼저라는 뜻이었다. 새치기 여성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고, 난 계산을 마쳤다. 적절한 한 단어였다.


호텔로 돌아가 여러 음식—토마토와 과일 타르트, 우유와 콩고기—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모기로 인해 뺏겼던 잠을 보충했다.



여행자의 식단



1시간 정도 자려했던 낮잠은 3시간으로 늘었다. 일어나 보니 해가 이미 중천을 넘긴 오후 4시였다. 다급해진 마음에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베네치아의 첫인상인 푸른 청동 돔 성당으로 향했다. 배경 하늘이 전날보다 좀 더 청량해졌기에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마침 옆에 있는 두 유럽인 여성에게 부탁했더니 적당히 괜찮은 구도로 4장을 찍어줬다.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났다.





다시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산 마르코 깃발을 지나서 비교적 한적한 골목을 걸었다. 걷다 보니 단단한 벽과 첨탑이 있는, 성채와 같은 모양새의 큰 성당을 마주했다. 프라리 성당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흔하디 흔한 유럽 성당 중 하나려니 했지만, 구글 맵을 보니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베네치아 화가 티치아노의 그림이 있다고 했다. 들어갔다.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자연광, 벽면을 장식한 정교한 조각까지는 훌륭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 성모승천을 보려고 5유로를 내고 들어간 것인데... 그림을 본 것도 안 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제단은 복원 공사 중이었고, 성모승천 그림은 실물 크기의 대형 가림막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하얀색 여백까지 맞춰서 잘라냈으면 완벽했을 것이다.



신성한 인쇄물



성당을 나온 뒤 남쪽으로 향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도착했다. 베네치아 역사를 바꾼 레판토 해전 그림을 자세히 봤다.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실질적으론 쇠퇴가 시작된 순간을 신의 축복으로 포장한 방식이 정치적이었다.

그 외 미술관 작품들도 대체로 성스럽고 훌륭했으나 건물 밖이 더 그림이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고 서둘러야만 했다. 40분 만에 나왔다.


아카데미아 다리에 올라가니 익숙한 장면이 생겨났다. 대운하를 중심으로 양쪽에 화려한 저택들이 자리하고 그 너머로 살루테 성당이 보였다. 전형적인 그림 엽서 구도였다.

이번에도 옆에서 풍경을 찍고 있던 유럽인 여행자에게 내 사진을 부탁했다. 어색한 미소로 요청을 받아준 그 여행자는 구도마저도 어색하게 4장을 찍어줬다. 인물 중심이 아닌, 풍경에 인물이 끼어든 결과물이었다. 어디에서도 쓰기 힘든 사진이었다. 일단 감사 인사는 하고 떠났다.


프로파간다
풍경은 좋았다



다시 산 마르코 광장에 갔다. 전날은 공간만 남겼기에 이날은 공간 속 나를 남기고 싶었다.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곳인 만큼 신중해야 했다. 마침 두 명의 대학생, 혹은 최소 20대로 보이는 중국인 여성들이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서로를 찍어주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다 싶었다.


"你好。你们是中国人吧?能帮我拍张照片吗"

(안녕하세요. 중국인이시죠? 제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你也是中国人?"

(당신도 중국인인가요?)

"我是韩国人,只是会说一点中文"

(난 한국인이에요. 그냥 중국어 조금 배웠어요)

"啊,是吗。当然可以。手机给我吧。"

(그렇군요. 물론 괜찮아요. 핸드폰 이리 주세요)


지금까지의 외국 여행에서 이들만큼 전문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 준, 촬영을 해준 사람들은 여태 없었다.

광장이 스튜디오로 바뀌었다. 까다롭게, 때로는 조금씩 짜증도 내면서 나에게 여러 포즈와 표정을 취하길 요구했고 순순히 따랐다. 근접과 원거리 모두 포함해 3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줬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더니 그들이 가진 카메라로 더 찍어주고 파일 공유로 보내준다길래 그 역시 따랐다. 나도 두 사람이 모두 나오는 구도로 찍어줬다.

세 차례 감사 인사를 하고 그들의 여행이 즐겁기를 기원해 드리고 헤어졌다. 촬영해 준 사진 중 하나는 한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다.



잠깐 부둣가로 갔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 하늘엔 분홍빛 잔광이 구름에 스며들었고 가로등엔 일제히 조명이 켜졌다. 자연과 사람이 만든 빛이 함께 있는 짧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만남과 공존



광장으로 돌아갔다. 30분 동안 시간과 빛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장소를 바라봤다.

공화국 도제와 귀족들부터, 이름 모를 상인과 예술가, 여행자 그리고 현대의 관광객들까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건물과 바닥, 하늘을 바라봤을까.

한복판에 섰을 때 무슨 생각과 감정이었을까.

적당히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걸음소리에 맞춰 두 발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광장을 거닐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금발과 은발 사이 밝은 장발의, 두꺼운 옷차림의 여성이었다. 곧 웃음이 터질 거 같은 얼굴로, 짧은 셀카봉을 들고 생중계하듯 자신의 모습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내가 지켜보는 걸 의식했는지 서로 시선이 마주쳤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촬영하고 계세요? 재미있어 보여요.”

“안녕하세요. 네 오늘이 베니스에서 첫날이에요! 진짜 행복해요! 여기에 있는 게.”

“그렇게 보이네요. 이 광장 정말 대단하죠?”

“정말요! 이거 한번 써보실래요?”


그녀는 나에게 한번 써보라고 셀카봉을 건네줬고, 난 멋쩍게 셀카 몇 장을 찍은 뒤 돌려줬다.

“고마워요. 전 한국 서울에서 왔어요. 당신은?”

“폴란드에서 왔어요. Warsaw!”

“아 바르샤바. 멋진 도시에서 왔네요. 나도 언젠가 한 번 갈 예정이에요.”


그 당시엔 그냥 예의상 한 말이었다.




불빛 전시장



어둠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을 즈음 광장을 떠나 운하변의 바포레토 정류장으로 갔다. 탑승객이 적었기에 전망이 괜찮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잔잔히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물가에 전시된 불 켜진 작품들을 구경했다. 전시품들은 알아서 뒤로 서서히 움직였다. 산타루치아역 부근에 도착하기까지 30분 간 야외 관람을 즐겼다.



전시작 1, 2, 3



바포레토 탑승 전 전날 함께한 동행에게 다시 연락했었다. 또다시 인당 4만 원을 쓰긴 무리였기에 역 건너편 버거킹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16세기에 지어진 저택에서 20세기의 음식을 먹으며 간단한 스몰토킹을 나눴다.


“오늘은 어떠셨어요?”

“별일은 없었고... 잘 돌아다녔어요. 사진도 좀 찍었고.”

“그럼 이제 내일 다른 도시로 이동하시는 거예요?”

“지금 호텔은 2박으로 잡았었는데... 광장 근처 호텔에서 1박 더 있으려고요.”

“베네치아가 되게 마음에 드셨나 보다. 그럼 그다음엔 어디로 가시려고요?”

“글쎄요... 말씀드린 대로 원래는 피렌체 갈 계획이었거든요...”


전날의 제안이 다시 떠올랐다. 강요받은 건 아니었지만 선택할 시점이긴 했다.

아는 사람 없는 아름다운 역사 도시와, 아는 사람이 생길 적당히 괜찮은 현대 도시 중에서.


잠깐의 고민 끝에 사람을 택했다.


“음... 밀라노 먼저 가보려고요. 어제 말씀하신 그 사람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그럼 제일 친한 분 연락처 알려드릴게요! 미리 말씀은 드려놨어요.”


햄버거를 먹고 잠깐 함께 걷다 헤어졌다. 호텔까지는 금방이었다.



르네상스 햄버거집



방에 들어오니 다시 모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몇 마리를 더 잡은 뒤, 샤워를 마치고 여행 코드가 맞는 후배에게 톡을 보냈다.

‘유럽 여행 공식은... 북암 남베’



괜찮은 하루였다.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