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바다를 이겨낸 땅에서 처음으로 뜻대로

2022년 4월 5일, 7일 차 기록

by Rhi hyun


산타루치아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다 내음 섞인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운하 너머 성당의 푸른 청동 돔 위를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하늘은 흔한데 아래는 유일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호텔로 향했다. 상점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지나니, 의외로 널찍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이지만 베네치아에선 광장이라 부르지 않는 곳, 캄포였다. 어설프게 한 발로 바닥을 쾅쾅 찍어보니 단단했다. 이 아래 나무 말뚝과 진흙이 있다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땅이었다. 그 너머 단정한 아이보리색 석조 성당까지 눈길을 돌리니 이 도시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임을 실감했다. 예상했던 주홍빛 도시와는 달랐다.


단단한 땅의 단단한 건물



도시의 다리는 건널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빛을 선물했다. 점차 기울어져 가는 늦오후의 태양 빛이 운하 왼쪽은 그늘지게 오른쪽은 건물의 원색을 한결 강렬하게 만들고 있었다.

운하 변의 호텔 Filu에 도착했다. 내부는 2010년대 한국이었다. 나무 대들보 아래 폴리싱타일 바닥이 깔렸고, 모더니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서 동해안 숙소를 만날 줄은 몰랐다. 전날 공항 착각으로 인한 숙박일 변경으로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호텔 직원은 가볍게 웃으며 40유로만 제시했다.





낯선 도시의 친숙한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창문을 여니 물 비린내가 올라왔다. 방충망은 없는데 모기는 있었다. 잠깐 의자에 앉았다. 번잡한 호텔 앞 거리와 달리 방안은 적당한 적막이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다. 긴 숨이 나왔다.


바닷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 번화가 서점에서 제목에 이끌려 산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몇 번이고 읽었다.


땅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 바다 위에 새롭게 땅을 만들었다. 살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갔다.

금화를 위해 십자가까지 내린 상인들. 공화정을 지키려고 지도자를 사형시킨 위원회.

강국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기록. 황혼의 시기에 예술의 중심이 되었던 곳.

끝내 나폴레옹에 멸망한 나라.


천 년간 처절함 속에 우아함을 꽃피운 도시였다.

최초의 세계일주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기록을 남긴,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나라였다.


운하와 곤돌라, 원색의 건물들로 상징되는 낭만의 베네치아.

나에게 이 도시는 그 모든 걸 위해 바다를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제 그들의 공간을 걸을 수 있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순간 카톡 알림이 울렸다. 일주일째 혼자 매 끼니를 해결한 터였다. 도착 전 베네치아에서 같이 식사할 사람을 찾으러 유랑 카페에 글을 올렸었다. 30분 전 올린 글에 바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카페 글 보고요. 여행 오셨어요?’

‘네네 안녕하세요. 맞아요. 오늘 방금 도착했네요.’

‘그러시구나! 전 여기 유학생이에요. 괜찮으시면 같이 돌아보실래요?’


여행자든 학생이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틀째 한국인과의 만남이었다. 이번엔 우연이 아니라 의도한 것이지만.

‘네 좋아요. 전 역에서 가까운 카나레조 쪽 호텔이 있습니다. 어디세요?’

‘네 저도 근처예요! 지금 나갈까요?’

빠름의 민족은 여기에서도 여전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잠시 뒤에 나갔다.


호텔로 넘어올 때 건넌 다리 바로 앞에서 만났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비교적 짧은 머리의 한국인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닫힌 시기임에도 대학생만의 활기가 느껴졌다. 서로 인사와 소개를 주고받으니 그가 물었다.


“베네치아에선 얼마나 있을 계획이세요?”

“글쎄요.. 일단 2박 잡았는데 길면 3박?”

“3박씩이 나요...? 베네치아가 그 정도인가...


여행자와 유학생의 관점 차이인지, 베네치아가 ‘그 정도’인지는 아직은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려던 약속이 어느새 동행으로 이어졌다.

다리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이어지는 중심가를 같이 걸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빛바랜 건물들 사이를 걸으니, 남유럽의 정취는 느껴졌지만 운하가 보이지 않아 베네치아만의 고유함이 줄었다. 간간이 남쪽으로 향한 골목으로 내려가야 대운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그냥... 유럽이네요. 예쁘긴 한데”

“진짜요? 그래도 다를 텐데... 자세히 보세요.”


그러고 보니 건물은 색뿐만 아니라 창문도 다양했다.

일반적인 직사각형 모양부터,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듯 둥글게 휘어지다 끝이 솟은 모양, 상부가 반원형인 것, 중앙 위만 살짝 뾰족한 아치 형태까지. 한 나라, 한 지역만의 양식이 아니었다.

몇백 년간 지중해 전역에서 사람들이 드나든 국제 항구 도시의 흔적이었다.


“창문 모양이 다양하네요.”

“그것도 그런데... 뭐가 없잖아요.”

“아...”

어느 길거리에나 있는 차량이 여기에는 없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차 없는 거리



거리에 관광객들은 평일 저녁의 서울 번화가 정도로 있었다. 적당한 활기에 걷는 데 막힘이 없었다. 여러 갈래 길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히 길거리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덩치 큰 아프리카계 상인과 마주쳤다.

“차이나? 코레아? 자판?”

순간 멈칫했다.

“What?”

“차이나? 코레아?”

China가 먼저 오는 건 당연했으나 그다음이 Korea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실감이 되었다. 무언가를 사진 않았다.


계속 길을 걸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나타났다. 위의 산 마르코 사자와 알파벳만 아니었으면 아랍의 어느 저택으로 착각할 뻔한 곳이었다. 문이 열려있기에 잠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갤러리 같은 느낌에 잠시 주저했다.

내 모습을 보더니 옆에서 덤덤하게 말했다.

“여기 마트예요”

“네?”

“원래 극장이었는데 마트로 개조해서 쓰는 건물이에요”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부담 없이 들어갔다. 안에는 말 그대로 식료품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아래는 다이소인데 천장은 궁전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일상의 마트마저 예술적으로 쓰고 있었다.



갤러리아 마트
예술의 생활공간




골목을 걷고, 운하를 보고, 다리를 건너길 반복했다. 그 사이 건물들은 외벽의 색상, 높이, 창문 형태까지 모두 달랐지만 이 도시만의 것인 건 분명했다.

햇살이 조금씩 묽어질 쯤에 리알토 다리에 도착했다. 대표적 랜드마크였지만 이 날은 사진만 몇 장 찍고 오래 머물진 않았다. 더 빨리 가야 할 곳이 있었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다. 걸을수록 길은 좁아졌고, 사람은 많아졌다. 그러기를 10여분, 골목이 끝나고 아치로 연결된 회랑이 나왔다. 회랑까지 빠져나오는 순간 시야가 넓어졌다.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광장(Piazza)이라 불리는 곳,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도착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숱하게 상상했던 곳이었다.

대항해시대 게임 속 가상공간에서 수없이 돌아다녔던 곳이었다.

(게임에서 난 마이너하게 베네치아 국적을 택했었다. 캐릭터 이름은 ‘피가페타’.)


스쳐오는 바람을 받으며 적당히 있는 관광객들의 들뜬 말소리를 들으니, 상상과 가상에서 실제 공간으로 왔다는 현실감각이 생겨났다.

‘설계를 참 잘했구나...’

첫 번째 인상이었다.


절대적 넓이가 그리 넓지 않음에도, 입구까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거쳐 온 사람이라면 광장의 직사각형에 가까운 반듯함과 갑작스러운 트여있음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광장을 둘러싼 세 건물은 앞서 본 건물들과 달리 통일성과 규칙성을 띠고 있었다.

과거 베네치아인들은 상업과 정치뿐 아니라 공간 설계마저 베네치아였다.


잠깐 멍한 상태로 서 있자 옆에서 말해줬다.

“나폴레옹이 유럽 최고 응접실이라 불렀던 곳이에요.”

처음 들은 말이었다. 해가 지기 전인 그때는 그 표현이 와닿지 않았다.


광장과 함께하는 산 마르코 대성당은 이 시기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그 비잔틴풍의 화려함을 완전히 접하지 못했다. 대신 성당 전면의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산마르코 사자 황금상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사자의 자태부터가 이곳이 만만치 않은 나라였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걸어서 들어올 때 좁고 복잡함을 통과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바다를 향한 출구는 널찍하게 열려 있었다.

그들다웠다.



단 하나뿐인 광장


포효하고 싶은 사자



광장의 개방감도 바다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두 시간 만에 다시 자연을 보며 숨 돌렸다. 곧바로 허기가 찾아왔다.

식당을 탐색하려던 찰나에 A의 조언이 떠올랐다.

‘절대 중심가 식당에 가지 마. 호텔에서 추천해 주는 곳도 가지 마. 어차피 다 연결되어 있어.’

그 말을 충실히 따라 구글 맵으로 광장에서 동쪽으로 500미터 이상 떨어진 카스텔로 구역을 탐색했다.

‘Ristorante Bacarandino ai Corazzieri’라는 이름에서부터 로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식당을 찾았다. 구글 리뷰 수는 500개 정도로 그리 많지 않으면서 평은 괜찮았다. 동행 역시 이 구역으론 잘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곳이다 싶었다.





탄식의 다리를 건너 한적한 부둣가 길을 걸었다. 곤돌라를 포함해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한 모습은 언제나 편안함을 가져다줬다. 10분이 지나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고 목적한 식당에 도착했다.


노란 조명이 곳곳에 매달린 식당에는 길가로 길게 친 녹색 어닝 아래 야외 테이블도 있었다. 실내 보단 바깥공기를 쐬며 식사하고 싶기에 그 자리를 선택했다. 몸짓은 활발하고 머리숱은 적은 남성 웨이터는 적당한 미소와 함께 테이블 세팅과 동시에 전기히터까지 가져다주었다.


빨간색 보가 덮이고 식기가 세팅되자 놀라는 목소리로 동행이 말했다.

“와... 저 이런데 처음 와봐요. 비쌀 거 같은데...”

일주일 만에 모국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였다. 실직자가 그래도 학생보단 형편이 나았다.

“모처럼 온 김에 기분도 낼 겸 제가 살 거니까 걱정 마세요.”
“아 그럼 죄송한데... 저도 반반 낼게요.”

“아니에요 그래도 이미 아는 곳 저 때문에 같이 걸어주신 건데... 제가 대접할게요.”

“고맙습니다...”


잠깐 그의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역시 닫힌 시기에 와서 현지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같은 한국인 유학생도 같은 과나 단과대엔 없었다고 했다. 대신 이탈리아 북부 한국 유학생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고. 그중 친한 사람들은 밀라노에 있다고 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간간이 교류해서 다행이겠네요”

“네 사람들 되게 좋아요. 혹시 밀라노 갈 계획은 있으세요?”

“밀라노요?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원래 베네치아 다음엔 피렌체 가려고 했어요.”

“밀라노도 볼 거 생각보다 많아요. 괜찮으시면 제가 거기 분들 소개해드릴게요.”


잠깐 생각했다. 베네치아에선 운 좋게 친절한 동행까지 만났지만 피렌체에선 또 어떻게 될지 몰랐다. 모국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이틀째 깨닫기도 했다.


“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나중에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걸을 땐 느끼지 못한 저녁의 쌀쌀함이 앉아서 기다리니 다가왔다. 히터가 틀어져 있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이에 동행이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웨이터를 다시 불러 안으로 이동을 요청했다.

웨이터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극적일지는 몰랐다. 대놓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궁시렁거렸다. 호의적 반응이 아닐 거란 예상은 했지만 당황했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동행은 무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좀 마마보이 같은 것도 있고... 원래 저래요. 그러려니 하세요”

대학생이었지만 그 순간엔 현자로 보였다.


따뜻한 내부로 들어가 주문한 라자냐와 소고기 탈리아타를 메인으로 먹었다. 좀 떨떠름함이 남아있었지만 요리는 그래도 요리였다. 두 명이서 60유로면 친절한 안내자에 대한 대접으로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랜만에 함께



식당을 떠나 골목을 지나서 다시 부둣가로 나온 찰나, 동행이 갑자기 당황했다. 가방을 두고 왔다고. 그 말에 곧바로 돌아갔다.

아까 그 웨이터는 이미 알고 가방을 별도로 챙겨둔 터였다.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투덜거리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이번엔 환하게 웃으면서 바로 챙겨주고 뭐라 뭐라 기분 좋게 말했다. 동행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베네치아 관광 즐겁게 하라고 하네요.”


웨이터도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동행과 헤어진 뒤, 해가 완전히 진 베네치아를 혼자 다시 걸었다.

어둠 속 조명만 남은 도시엔 고요함이 깔렸다. 곧바로 산 마르코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은 연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은 줄었지만 설렘은 남아 있었다.

밤의 서늘하고 습한 공기는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을 한층 더 울리게 전달했다.

촘촘히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이성을 누르고 감정만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의 영화와 지금의 환희를 이어주고 있었다.


22년 4월 5일 밤,

그전까지의 모든 일과 기억은 잠시 사라졌다.


그 순간 난 공간 자체에 빠져있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