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이 4시간 8분처럼 흘러 화요일은 어느덧 코앞에 와있었다.
"언니, 첫 번째 만남보다 두 번째 만남이 더 중요한 거 알지? 이번에 잘해야 해~"
친한 동생의 당부 아닌 당부를 듣고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48시간은 나를 업그레이드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 그래, 일단 외모를 업그레이드 하자! 남자는 시각에 약하다고 했어!!
손톱 열개에 몇만원씩 하는 것이 너무 비싸게 느껴져 평소 네일은 잘 받지 않는 나지만 이번엔 다른 상황. '최선을 다해 예뻐지자!'라고 결심한 나는 오래간만에 네일숍의 문을 두드렸다. 매니큐어 색들은 왜 이리 다양한지.. 그다지 하얗지 않은 나의 손에 어울리는 색깔은 과연 없는 걸까.. 어두운 색, 짙은 색은 너무 쎄 보일 수 있고, 호불호가 갈리므로 패스- 파스텔톤 색은 손이 더 까맣게 보이므로 패스- 고심 끝에 고른 색은 한 듯 안 한듯한 살색이었다.
어떤 옷을 입고 데이트를 할까 고민할 때 나에게 남동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디테일한 조언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남자의 눈'으로 스타일을 지적해주기 때문.
"이 옷 어때?"
"이건 어때?"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고 있는 동생에게 혼자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며 어떤 게 제일 예쁜지 물어보는 중. 동생은 귀찮은지 한 스타일 당 1초도 채 안 봐주고는 네 개의 스타일 중 일 번을 외쳤다. 동생이 골라준 옷은 위에는 붙고 아래는 꽃처럼 퍼지는 스타일의 원피스였다. 그래 내 동생을 믿어보자! 나는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원피스 위에 어떤 목걸이가 어울릴지 고심하며 몇 개 안 되는 목걸이를 해보고 풀르고를 반복하였다.
화요일. 그를 만나기 직전! 나는 이수에 있는 미용실로 향했다. 예전 베프 결혼식 때문에 우연히 갔다가 드라이를 너무 잘하는 헤어디자이너분을 만난 뒤 중요한 일이 있으면 가는 그곳! 허겁지겁 도착한 그곳에서 드라이를 했다. 10여분의 드라이에 2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지만 나는 꽤 볼륨감 있고 여성스러운 C컬 머리를 몇 시간 동안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했다. 제발 헤어지기 전까지만 유지되라!!
전쟁 나가기 직전, 총알을 장전한 여군처럼, 나는 네일과 여성스러운 원피스와 드라이한 헤어를 장착하고 난 뒤 왠지 모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장착을 마치고 만나기로 한 장소인 사당의 한 서점으로 이동했다. 서점 안, 가득한 책들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내가 돌진한 곳은 서점 안 아늑한 화장실. 그곳에서 이십분에 걸쳐 화장을 고치고 지우고 다시 하고를 반복하고 최선의 상태로 만들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십 분이 남아 에세이가 있는 부분에서 적당한 책을 골라 읽으며 그를 기다렸다.
곧 나의 핸드폰은 그가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그는 서점에서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데 뭔가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착각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만... 쩝;)
"예약해 놓았어요. 오 층으로 가시죠"
그가 예약한 곳은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와 와인을 파는 분위기가 고급진 레스토랑이었다.
"뭐 드실래요? 고르세요"
그가 내민 메뉴판에는 다른 레스토랑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의 숫자들이 음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쓰여있었다. 소개팅남과의 데이트에서 나는 이럴 때 웬만하면 가장 싸거나 두 번째로 싼 음식 중에 고른다.
"까르보나라 먹을게요"
두 번째로 싸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해서 고른 까르보나라!
"여기 세트 메뉴가 있어요! 세트메뉴 드세요"
그는 내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메뉴판에서 세트 메뉴 페이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 저 괜찮은데.. 배가 많이 안고파요"
"여기 세트메뉴가 좋다더라고요~ 세트메뉴 드세요!"
세트메뉴는 삼만 원 후반대부터 있었다. 그가 하도 권유해서 나는 세트 메뉴 중에서도 가장 싼 메뉴를 골랐다.
"스파게티 세트 먹을게요!"
각종 스파게티가 차례로 나오는 세트메뉴를 골랐지만 그는 그 밑에 스테이크 세트를 먹으라고 했다.
'그건 오만원이나 하잖아... 너무 무리 아닌가..'
손사래 치며 배가 안 고프다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기요~ 저희 스테이크 세트 두개 주세요"
라며 결국 가장 비싼 세트를 시켜주었다.
첫 번째 만남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시킨 '스테이크 세트'는 수프를 필두로 시작되었고, 그의 입에서는 적극적인 멘트가 시작되었다.
"oo 씨, 남자 머리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머리를 좀 자를까 하는데 짧은 머리는 안 좋아하시나요?"
"왜 남자친구가 없으신지 이해가 안 가네요."
"제가 쌍꺼풀이 없는데 제 눈은 마음에 드세요?"
'갑자기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이 원피스가 먹혔나? ㅎㅎ'
동생말 듣길 잘했다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스테이크 세트'를 천천히 즐기며 그의 말에 적당히 답해주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난 뒤에 그는 사당에서부터 차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우리 집까지 흔쾌히 태워주었다.
기분 좋은 예감이 절제할 틈도 없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두 시간 뒤, 내 핸드폰은 기분 좋은 진동질을 해댔다. (벌써 혼자 결론낸;)나의 미래 남자 친구, 그였다!!
'또 데이트 신청을 하려나? ㅎㅎ'
나름 자신감을 갖고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ㅇㅇ씨 저 집에 잘 도착했어요. 오늘도 즐거웠어요..."
라며 오늘 데이트에 대한 그의 소감은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