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상대성에 관하여
영화 인터스텔라에 보면 밀러행성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이 다르게 나온다. 밀러행성에서는 1시간에 지구에서는 7시간. 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에 사는 평범함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더러는 바쁘게 보낸 하루도 가끔은 늘어져서 지루하게 보낸 하루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시간의 흐름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는 정확히 달랐다.
항암치료. 2-2. 처음 수술하고 8차에 걸친 항암을 첫 번째로 보고 이번엔 1년 5개월 만에 재발하여 다시 시작한 것을 두 번째로 여기면 이번엔 두 번째 중의 두 번째 사이클이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간 체력을 끌어올려 놓은 덕인지 약간의 입맛 없음을 제외하고는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그래서 기존의 일상을 이어가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전신으로 반응하는 항암제가 내 세포 깊숙이 하나하나 훑고 지나가니, 강한 태풍에 도로며 간판이며 나무가 뽑히고 하는 것처럼 내 몸도 이미 한차례 폭풍을 맞이한다. 그렇게 지나간 재해는 꼭 흔적을 남기고 복구하는데도 시간이 퍽이나 걸린다. 그래서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 말고는 슬프게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나의 시간에 갇혀서 숱한 부작용의 증상들과 암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에도 내 주변의 일상의 시간을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문자 메시지, 읽지 않으면 수십 개가 금방 쌓여버리는 톡. 그에 속도를 맞추기조차 힘이 부친다. 우선 아주 중요하지 않은 톡 방의 종 모양에 사선을 긋는다. 그러고는 벨 소리를 반 정도로 줄여 놓는다. 사실 아주 급한 일이면 전화를 할 테지. 사실 그 전화 조자 받기 힘에 부칠 때도 있긴 하다. 세상과 나의 소통 창구를 20% 정도만 열어 놓은 것 같은 시간. 참 더디다. 그런 날은 매일 챙겨 보는 8시 뉴스도 스킵 할 때가 많다. 세상 흘러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것조차도 에너지가 쓰인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챙겨 먹고 그를 위해 끼니를 어쨌든 일정량 먹는 것 그것에만 나의 얼마 안 되는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니 나의 행성의 시간은 바깥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흘러간다.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검사실에서 하릴없이 그냥 무기력하게 기대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젊고 바쁜 사람들이야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휴대전화의 뉴스를 읽고 영상을 보면서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많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잔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시선을 두기도 하면서도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다. 단 5분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은 마치 내 삶의 직무유기라도 되는 양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할 일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는 내 이기적인 기준으로만 그들을 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뿐이지 그들도 그들의 시간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항암 주사 후 생기 없이 쭈글쭈글 절여진 배추처럼 늘어져 있을 때도 난 가만히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면서 눈치를 보아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있었다. 몸이 축축 처지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두통에 침대에 기대앉은 시간이 많아지고 즐겨듣던 오디오 북조 차도 소음으로 여겨질 만큼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하지만 난 나의 시간을 내 몸이 보내는 주파수에 맞춰 천천히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이해 안 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다. 내 주변의 것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으면 있는 대로 안 되면 좀 꺼버리면 어떠랴.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지면 그만이다. 그러니 지금도 옳고 그 때도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