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썼던 글을 2편으로 정리하여 22년 상반기 심야메일 객원필진으로 참여하여 발송했습니다.
성실한 호구의 시간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욕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주어진 일을 무조건 열심히 하는 태도는 나를 언제나 손 흔드는 복 고양이 마네키네코처럼 움직이게 했다. 덕분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그러나 개인적인 평판과 별개로 업무 고과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모든 조직은 성장을 목표로 한다. 조직은 자신의 성장을 측정하기 위해 매년 초 수치화된 목표를 세운다. 연말에는 그 수치의 달성 정도에 따라 그 해의 성과를 측정한다. 그러나 조직이 굴러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이 성장 목표의 수치화된 항목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작년보다 더 높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다른 사람은 지난해와 같은 정도의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일을 해야 한다. 루틴한 일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구성원은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고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의 성과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면 좋겠지만, 회사는 친목 단체가 아니다. 조직은 그 해 성과에 대해 개인의 기여도를 평가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구성원에게 더 높은 보상을 제공한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조직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데 직접적으로 눈에 띄는 기여를 해야 한다. 사회생활이 결국 ‘정치’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잘 포착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치를 잘한다고 한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저평가 받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조직에서 정치 잘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입만 살아서 무임승차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실제로 좋은 성과를 받는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일을 잘 한다. 재무 목표, 조직이 생각하는 성장 방향, 조직 문화 활성화에 관심을 두고 어려운 업무에 자발적으로 지원하거나 조직을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조직이 필요로 하는 개인의 역량을 쌓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에 속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 특별히 원하는 전공은 없었던 것처럼, 주어진 일은 열심히 했지만 이 조직에서 특별히 이루고 싶은 바가 없었다. 조직의 성장을 위해 질문을 던지거나 고민한 적도 별로 없었다.
시키는 것만 열심히 했다. 조용히 자기 몫은 하지만 더 큰 욕심은 내지 않는 존재, 그래서 일 시키기 좋은 존재, 그게 나였다. 성실한 호구였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난 이 조직에 시간과 몸은 주었지만 마음은 주지 않았으니까.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나를 찾기 위한 일들을 하기에도 충분히 바빴다.
다이어리에 ‘영어 공부하기’를 적어 둔다고 저절로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 찾기’를 마음에 담아두고 산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지지 않았다. 삶은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님에도 그때의 나는 세상 어딘가에 ‘내가 하고 싶은 일’ 이 이미 존재하고 문제를 푸는 수험생처럼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은 ‘해봤다’라는 만족감 이상을 남기지 못했다. 물론 해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아 매 순간 열등감을 장착하고 살던 나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나는 무엇인가를 계속 ‘소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커피숍에서는 쿠폰 도장 10개를 찍으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주기도 하던데, 새로운 경험을 10가지, 20가지 했다고 해서 삶이 나에게 ‘만족스러운 자아’를 선물로 주지 않았다. 다이어리는 언제나 빼곡했지만 적혀진 것들을 성실히 수행해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험은 고정된 수입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기에 월급이 없어지면 언제든 사라질 신기루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여유로워진 일상이 좋으면서도 온전히 누릴 수는 없었다. 불안을 상쇄시킬 결정을 해야 했다. 그때도 ‘여기는 아니다’라는 마음속 편견을 의심해 볼 생각은 못했다.
사실 나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고민한다. 학교 졸업하고 취업이라는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더 이상 해야 할 숙제가 없다. 열심히 앞을 보고 달렸는데 결승선이 없는 것 같은 기분. 그때 많은 직장인들이 자격증 시험, 대학원 진학, 이직 등을 선택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던 나는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가장 괜찮은 선택지는 컨설팅 회사로 이직해서 IT컨설턴트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운영하던 시스템은 글로벌 솔루션이었고,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도 괜찮았다. 전문직에 가까웠으며 컨설턴트로 전향할 때에는 현재보다 연봉도 높았다. 그러나 프로젝트 단위의 업무를 수행하려면 장기 출장, 긴 시간 외 근무 등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가슴에 파랑새를 품고 사는 직장인 아니던가?
지금과 다른 일을 찾게 된다면 그것은 좀 더 의미 있는 일이었으면 했다. 소명이나 사명감 같은 것에 삶의 무게중심을 두고 싶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일’, 나아가 ‘나여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삶은 환상적으로 스틱을 돌리는 드러머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 미추를 꿰뚫는 예술가에게 있다고 믿던 때였다.
그 즈음 나는 심리학에 빠져있었다. 수십 권의 심리학 책을 읽고 스터디 모임에서 공부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내가 답답했고, 그 원인을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그에서 비롯된 심리적 원인에서 찾았다. 책을 읽으며 나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 성장 과정의 영향을 분석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심리학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문득 이런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홀린 듯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했다. 그렇게 나는 샐러던트가 되었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XX대리" 밤에는 "OO학번 학생" 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퇴근하고 책상에 앉아 강의를 듣고, 주말이면 근사한 북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오랜만의 공부는 재미있었다. 일반 독자를 위해 출간된 책만 읽다가 그 책들의 기반이 되는 이론을 공부하니 찐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 같았다. 시차가 정반대인 곳으로 출장을 갔을 때에도 눈을 비비고 새벽에 일어나 시간 맞춰 시험을 보았다.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파랑새를 찾은 것일까?
Nowhere 에서 Now and Here 로
시간이 흘러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은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다. 전문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 박사 학위가 필수고 오랜 수련 기간도 필요하다.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계속하자니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매월 입금되는 월급, 다른 사람들의 시선, 실패에 대한 불안감.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지금의 생활에서 더 나빠지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탓이 클 거다. 사실 공부를 하는 동안 나를 움직이게 하던 동력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행복감’보다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그 시기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새로운 생명은 경이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씨름하다 보니 점점 내가 희미해졌다. 아이의 배냇짓에 미소 짓다가도 책 한 장 읽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새벽녘에는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대로 ‘엄마’ 로만 살게 돼버리는 건가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때마다 달력을 들여다보며 복직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었다. 직장 생활 내내 틈만 나면 탈출을 이야기하던 나였는데 그곳 덕분에 위로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동그라미를 300번 넘게 그리고 복직했다.
그러나 ‘직장인’과 ‘엄마’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하는 엄마가 갖는 죄책감’과 ‘예전만큼 성실한 직장인일 수 없다는 자괴감’ 사이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동안에는 꿈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 “아이 낳고도 회사 다닐 거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육아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은 야근하는데 아아가 열이 나 혼자서 퇴근해야 하는 날에는 퇴사 버튼을 눌러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다녔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엄마라는 역할이 나를 집어삼키고 나는 집 안에 갇혀버릴 것 같았다. 아이 돌봄을 위해 월급의 반을 털어 시터을 고용하며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돈으로 해결했다. 죄책감과 자괴감 사이에서 질식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아이는 혼자 걷고 말을 하고 대소변을 가릴 만큼 자랐고 나는 40대가 되어 있었다.
다양한 유혹에 맞서는 나이라는 不惑.
기대했던 40대의 모습이 있었다. 재미와 보람이 공존하는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며 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완성된 자아실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미 불혹이 되어버렸음에도 현실의 나는 그 모든 것이 아득했고 40이라는 숫자만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변화를 꿈꾸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선택하고 살아온 시간임에도 지난날이 원망스러웠다.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고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건데, 나의 어제는 오늘도, 미래도 불러주지 못했다.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는 반감이 들기도 했다. 분명 소소한 행복과 크고 작은 성취감들이 내 삶에 있는데 과거의 시간들을 전부 묶어서 실패라고 단언해버려도 괜찮은 걸까? 나는 정말 실패한 것일까?
문득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짧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80까지 산다고 해도 ‘스무 살까지의 나’와 ‘환갑에서 여든까지의 나’는 같을 수 없다. 떠오르는 해는 밝음을 기대하게 하지만 지는 해 다음 오는 것은 어둠이다. 최소한 그 어둠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은 어쩔 수 없다면 나는 남은 날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그렇게 마흔의 방황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공부 공동체 <트러블>을 만났다. 학인들과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자본주의와 사랑’, ‘자본주의와 돌봄’을 주제로 세미나를 하며 고정불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대라는 시대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하는 일을 찾게 된다면 24시간 몸과 마음을 다 주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본주의가 원하는 ‘이상적인 노동자’가 내면화된 것에 불과했다.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모성애가 야기하는 죄책감’과 ‘일 인분의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자괴감’ 사이의 괴로움이 사회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던 불만이 남편과 나의 성격이나 성향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구조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일상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잠을 줄이고 흘려보내던 시간들을 모아 책을 읽으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이 시대에만 유효한 상대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것. 자발적인 욕구라고 생각했던 바람이 정상성의 추구를 강제하는 사회가 낸 숙제라는 것. 게다가 그 숙제들은 양립할 수 없는 나를 요구한다는 것. 사실은 삶을 정답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이런 깨달음은 단선적으로만 인식되던 삶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D의 졸라맨이 벌떡 일어나 3D의 세계에서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자아를 실현하는 직장인, 여기에 결혼과 출산으로 얹어진 다정한 아내, 모성애 넘치는 엄마라는 숙제에서 수식어를 빼 보기로 했다. 단출하게 직장인, 아내, 엄마라는 명사만 적고 보니 ‘그 모든 것이 아닌 나’도 보인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40대 기혼 유자녀 여성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 있는 나.
그게 전부다. 도달해야 할 정답은 없다.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칭찬을 받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면 월급날이 돌아온다. 적금을 넣고, 카드 값을 내고, 엄마 용돈을 드린다. 수고한 나를 위해 배달의 민족을 호출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다음 월급날을 기다린다.
유난히 힘든 날엔 퇴직금을 조회해 보고, 그마저 부족한 날엔 나만 아는 파업(근무시간 중 딴짓)을 하기도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리고 아이에게 연산 문제를 풀리기 위해 실랑이하는 나도 지금 여기에 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겨울에는 따뜻한 차를,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를 옆에 두고 혼을 쏙 빼놓는 책을 읽으며 감동하는 나도 있다. 아이와 친구들이 뛰어다니는 거실 한 구석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비’를 읽던 어제의 나. 마음에 든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 잿빛이라 생각했던 그 새에게 푸른 빛도 있다는 것을 자세히 보기 전엔 몰랐다. 내가 하나의 정답을 찾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던 시절 삶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 꿈을 말하지 않는다. 현실에 뿌리 두지 않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오늘의 나를 닦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한다고 성공이며 행복이고 또 어떤 일을 못한다고 해서 실패이자 불행인 것이 아니다.
나에게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의 오늘 하루다. (내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오늘도 출근하는 이상 나는 아무튼 직장인이다.
“무한히 열려있는 미래를 향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것 외에는
눈앞의 실존을 정당화하는 길은 없다.”
- 시몬 드 보부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