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스로 돌아가다> 3부 중..
왜 없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투표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이 파트에서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 출신의, 젊은 시절에는 공산당 소속이었던 부모님이 국민전선에 투표를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분석한다.
(143쪽)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서 우피 혹은 극우파에세 표를 주는 일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146쪽~147쪽) 사회주의 좌파는 해가 갈수록 강도를 더하는 근본적인 전환의 경로로 들어섰고, 미심쩍은 열정과 함께 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좌파의 사상을 갱신한다는 미명하에 좌파를 좌파이게 헸던 모든 것을 지우려 애썼다.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지적인 준거의 갱신만이 아닌, 에토스의 전반적이고 심층적인 변환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착취와 저항이 아니라 '불가피한 근대화'와 '사회적 재정립' 에 관해, 계급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기'에 관해, 사회적 운명이 아니라 '개인적 책임' 에 관해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조적 대립이라는 관념은 공식 좌파의 정치적 정경에서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에 '사회계약' '사회적 협정'이라는 중화된 관념이 들어섰다. 이러한 틀 안에서 '법적으로 평등하다'고 규정되는 개인들 ('평등하다'고? 웬 질 낮은 농담이란 말인가!) 은 '특수한 이해관계'를 잊도록 (즉 입을 닥치고서 통치자들이 원하는 대로 통치하도록 내버려두도록) 요청받는다. .......새로운 정치철학은 '자율적인 주체'를 예찬하고, 역사적 사회적 결정요인들을 중시하는 사유에 종말을 고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유의 주된 기능은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해체하고, 이렇게 해서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의 파괴를 정당화하는데 있다.
(148~149쪽) 이러한 정치담론의 이행은 사회세계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켰고, 그에 따라 사회세계 그 자체도 수행적으로 변화했다. 사회세계는 상당부분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이 의존하는 사유 범주들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급'과 계급관계를 정치담론에서 사라지게 만든다고 해서, 또 그것들을 인지적, 이론적 범주에서 지워버린다고 해서, '계급' 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객관적 조건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 의 효용을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경제적 탈규제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집단적으로 느끼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분야의 가장 박탈당한 계층은 정치적 카드가 재분배될 때 일어나는 거의 자동적인 효과에 의해, 유일하게 그들에게 관심을 쏟는듯 보이는,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체험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는 담론을 제공하는 정당쪽으로 향하게 된다.
(151쪽) 역설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국민번선을 지지하는 표가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집합적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서민층의 마지막 호소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항상 짓밟힌다고 느껴왔고, 이제는 한 때 자신들을 대표하고 방어하던 자들에 의해서까지 짓밟히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의 존엄성을 수호하려는 호소 말이다.
존엄성은 그 자체 취약하고 불확실한 감정이다. 그것은 신호와 보증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통계나 회계 파일 속의 단순한 요인이나 무시할 만한 양, 그러니까 정치적 결정을 말없이 감수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요구한다. 모종의 신뢰를 보내던 이들이 더 이상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보일 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로 그 신뢰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