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15장 칸트
칸트는 주체가 대상(객체 object)으로부터 영향을 받음으로써 인식이 생겨난다는 기본적 사고를 뒤집었다. 그는 그 관계를 역전시켜 대상이 주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주체인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중략) 칸트는 신과 도덕규범같이 감각을 초월하는 대상들에 대한 합리적 직관 대신에 경험의 근본조건들에 대한 성찰적 통찰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인식론적 조건들에 대한 지식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중략) 따라서 우리의 경험에 구조와 질서를 부여하는 것 자체는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구조에 질서를 부여하는 이 능력은 우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중략)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객체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주체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중략) 경험이 보편타당한 원리를 따르도록 우리의 경험에 구조와 질서를 부여해 주는 것은 인식의 대상인 시물들에게서 기인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다.(602~603쪽)
=>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지식. 여기로부터 인간의 본질이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선험적 지식을 가졌다고 가정되는 주체가 바라보는 객체, 인식의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객체를 타자라고 생각해 보자. 칸트의 이러한 생각은 타자를 수동적 존재하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인식의 대상은 수동적이기만 한가? 혹은 주체들의 마주침을 상상해 보자. 누가 중심일 것인가? 중심은 아무 데도 없다. 킨트가 선험적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푸코의 에피스테메 일수 있다. 데리다의 기호나 텍스트 일 수 있고...
칸트 안에 이미 구조주의의 싹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말을 하기엔 나의 지식이 미천) 오버인가? 칸트가 생각하는, '우리 안에 있는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 자체가 기호에 의해 직조된 텍스트이고, 인식이 주체에 의해서 형성된다기보다는 인식 과정 그 자체를 통해 주체가 생성되는 것.
칸트가 전제한, 모든 인간이 가지는 동일한 원칙적 형식들, 보편타당하고 필연적(605쪽)인 형식들이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칸트를 읽는데 자꾸 구조주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