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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

<금붕어의 철학> 1장을 읽고

by 네오페이퍼


한편에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으로서 '항상-이미' 의 시간성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에는 현재와 미래의 동시성으로서의 '도래할 것'의 시간성이 존재합니다. (중략)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을 사유하기 데리다가 마련한 항상-이미의 개념들이 바로 에크리튀르, 흔적, 아카이브 등이고, 현재와 미래의 동시성을 사유하기 위해 데리다가 마련한 도래할 것들의 개념이 바로 사건, 책임성, 환대, 용서, 애도, 메시아 없는 메시아적인 것, 유령, 타자입니다.
<금붕어의철학> 68쪽



이 말을 은하의 설명을 빌려 이해하자면,

(은하는 작법서와 서사론 공부를 데리다의 이 논리를 통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느 시점, 어느 순간에 시작된다. 그러나 그 인물 안에는 과거에 그가 살아왔던 시간, 경험, 역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의 현재에는 그의 과거가 함께 있다. 그의 지금은 항상-이미인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흔적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사건을 만난다. (무엇이 그의 생에 사건이 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풍경이었을 어떤 일이 그에게는 사건이 되고 그의 삶을 전혀 다른 국면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feat. 나의 이해) 다가오는 타자, 사건을 맞이한 주인공이 책임, 환대, 용서, 애도와 같은 것들을 통과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현재와 미래의 동시성을 이런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데리다의 시간성이 이해될 듯 말 듯 했는데, 은하의 설명을 들으니 대강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크리튀르, 즉 기호로 기록해 텍스트를 생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넓은 의미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기술을 통해, 즉 기호의 모습으로 이념이 현재를 지나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에크리튀르죠. 그런데 이것이 꼭 이념만의 문제일까요? 이념뿐만 아니라 사물도 기술을 통해 기호가 됩니다. 이를 주 선생님의 표현대로 ‘사물의 기호-되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가설적으로 데리다는 기호와 텍스트의 외연을 사물로까지 확장시키는데, 여기에서 앞서 언급했던 기호적 동일성과 이념성의 기반으로서 ‘자기 지시성’이라는 관념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략)
주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에서 사물 또한 이러한 반복기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자기 지시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고 데리다는 조심스레, 그러니까 가설적으로 추측합니다. 바로 기술이 자연적 사물로부터 기호적 동일성과 이념성을 출현시킨다는 것이죠. 이를 제식대로 '사물->기술->기호'로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79~80)


내내 헷갈렸던 게 기술이라는 단어였다.

나는 기술을 technic으로 생각하며 읽었는데, 여기서 기술은 아래의 뜻이었던 거다. (그런 거 갔다ㅡ)

데리다는 사물은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기호로 생성되는 중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사람이 젠더 수행을 통해 여성(혹은 남성)으로 기호화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술은 반복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호가 되도록 하는 무엇이고, 실재는 기호를 통해 이해된다.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라는 성적진리로서의 섹스와 섹슈얼리티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기술적 매개를 통해, 즉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 수행'을 통해 반복되고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데리다에게서 진리 생산 사건이 기록물질 위에서 행해지는 글쓰기라면, 즉 버틀러에게서 성적진리생산 사건은 신체를 가지고 행해지는 젠더수행인 것입니다.
(83쪽)


젠더가, 그러니까 생물'학'적 성별 이전에 젠더수행이 먼저였다. 젠더라는 단어가 섹스라는 단어보다 늦게 나와서 계속 헷갈렸던 것 같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젠더수행이 있어왔다. 정말로 과거에 재상산을 위해 자궁과 난자를 가진이와 정자를 가진 이가 결합을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것만이 오로지 정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정상에 병리적인 것으로 여겨졌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리스 어느 시대에는 나이 든 철학자가 미소년을 사랑하는 플라토닉 러브가 진짜 사랑으로 여겨졌다는 걸 보니 그러진 않았을 거 같다. 호색한도 양성애자도 조금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이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성이 그렇게 중요한 어떤 구분점, 관리의 포인트가 아니었다는 거. 그냥 다양한 성적 진리가 (다소간 소수라 하더라도) 그냥 있었다. 생물'학'의 발전이 신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을 뒷받침할 특징들을 진리로 선택했다. 생물학적 섹스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미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이 다수였기에 이 젠더 수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들만 과학으로 기록되고 채택되는 것. 이제 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된 것. 이게 근대의 특징이라는 것을... 푸코가 <성의역사 1>에서 꼼꼼히 분석을 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것이 근대 국가 성립과정의 통치성과 연관 있다고 보았다. 근대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니, 국가가 되기 위해 쪽수(인구수)가 중요해진 거다. 그러다 보니 많이 죽지 않고 많리 낳도록 관리하는 겻이 국가의 주요 역할이 된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여하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로 호명되었고, 주민번호 뒷자리는 2번이다. 그리고 이 성별에 맞는 젠더수행을 할 것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강요받았다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꾸 '그래도 과학적으로 여하튼 여자니까 섹스가 먼저 아닌가'라고 여겼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이 이토록 중요해진 것은 젠더 수행을 좀 더 강제하기 위한 사회적 통치술일 수 있다 생각을 하니 좀 다르게, 좀 더 깊이 버틀러의 생각이 이해되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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