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AI를 쓸 수 있는 시대'의 역설
"전방 수류탄"
스페셜포스는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헤드샷을 날렸을 때의 손맛으로 FPS 장르의 재미를 처음으로 알려 준 게임이었습니다.
비교적 저사양 컴퓨터에서도 돌아갔던 스타크래프트와는 달리, 컴퓨터 사양에도 신경을 써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컴퓨터가 잠깐 버벅거리다가 사망하면 "똥컴 좀 바꾸라"고 같은 팀으로부터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게임이 안 풀리면 "이 놈의 똥컴 바꾸든가 해야지" 하면서 애꿎은 컴퓨터를 탓하며, 승률 좀 올릴 마음이 생기면 근처에 고사양이라고 현수막 달아 놓은 PC방을 찾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말이 반복됐습니다.
인쇄기가 나왔을 때 지식은 성직자와 귀족의 손에서 벗어날 거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이 나왔을 때 정보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독점물이 아닐 거라고 했고요. 그리고 지금 AI가 나왔을 때도 이 기술이 교육과 지식의 격차를 좁혀줄 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언제나 같습니다. 기술이 등장하고, 기회가 열리고, 격차가 좁혀질 거라는 약속이죠.
정말 그럴까요?
이런 패턴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캐나다 경제사학자 해럴드 이니스(Harold Innis)입니다.
이니스의 분석에 따르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처음에는 변방에서 기존 질서를 흔드는 힘이 생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미디어는 힘을 가진 이들에게 흡수되어 새로운 독점의 도구가 됩니다. 역사가 반복해 보여준 방식이었죠.
인쇄기가 지식을 대중에게 돌려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 출판사, 편집권, 유통망이라는 새로운 독점이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이 정보를 민주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위에서 플랫폼, 알고리즘, 광고 생태계라는 새로운 독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술은 언제나 공평함을 약속했지만, 기득권은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누구나 ChatGPT를 쓸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챗GPT도 무료와 유료의 차이가 있고, 유료 요금도 등급에 따라 사용 한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AI를 설계하고 소유하고 연구하는 분야는 보유한 자원에 따라 격차가 더 커집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필요합니다. 최고 사양의 GPU 한 장은 수천만 원에 달하고, 의미 있는 AI 연구를 하려면 수십에서 수백 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가격 문제도 아닙니다. 글로벌 GPU 공급 자체가 제한되어 있어서 돈이 있어도 못 삽니다. 압도적인 물량은 이미 북미권의 대학과 빅테크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이 자원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AI 연구의 출발선을 결정합니다.
경향신문이 국내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취재한 기사가 있습니다. 카이스트 박사 연구원이 뉴욕대 연구팀과 AI 모델을 공동 개발할 때, 국내에서는 게임용 GPU인 RTX-4090으로 모델을 만들고 규모 검증은 H100을 보유한 뉴욕대에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뉴욕대의 결과를 기다리는 데만 수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는 카이스트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검증하고 확장하는 인프라는 미국 대학에 있는 거죠. 이게 지금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국내로 한정해도 대학 간 격차가 있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국가 산업계 협력 프로젝트와 정부 AI 자문 체계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쌓아온 연구 인프라, 졸업생 네트워크, 기업 협력 채널이 다르기 때문이죠.
기회가 균등하다는 말이 출발선이 같다는 뜻은 아닌 겁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수조 원대 예산을 투입해 GPU 수만 장을 확보하는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가 AI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산업계, 학계에 인프라를 배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분명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 자원이 배분될 때 과연 어디에 더 많이, 더 좋은 조건으로 돌아갈까요? 연구 실적이 쌓인 기관, 산업계와 협력 이력이 있는 곳, 제안서를 잘 쓸 수 있는 교수진이 있는 곳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이미 갖춘 곳이 어디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매크로폴로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원 출신 AI 인재의 약 40%가 해외에 체류 중입니다. 한국은 AI 인재 순유출 지표에서 OECD 38개국 중 35위를 기록했고요.
인재가 떠나는 이유가 단순히 연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연구를 하려면 좋은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좋은 인프라가 있는 곳에 좋은 협력 네트워크가 생기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기회가 열립니다. 이 순환이 특정 기관과 특정 국가에 집중되는 것, 그게 지금 AI 시대에 재편되고 있는 지식 독점의 모습입니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Randall Collins)는 교육 기회가 확대될 때 앞선 자리에 있는 이들이 기준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 새로운 진입 장벽을 만든다고 분석했습니다. 대중이 대학 졸업장을 따라잡으면 석사, 박사, 유학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거죠. AI 시대도 이 패턴이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누구나 AI 도구를 쓸 수 있게 되면 기득권은 AI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AI가 격차를 해소할 거라는 이야기는 듣기 좋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니까요. 기술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은 지금의 구조적 불평등을 굳이 직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기술이 모든 문제의 답처럼 여겨지는 시대일수록 우리가 기술에 점점 더 기대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믿음 속에서 기존의 권력 구조를 묻는 질문이 조용히 희미해진다는 거죠.
"누구나 AI를 쓸 수 있다"는 말이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격차보다 보이지 않는 벽이 더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강남과 지방의 교육 격차는 수치로 드러나서 논쟁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대학 연구실이 더 좋은 GPU를 쓰고 어느 교수가 어떤 기업과 협력하며, 그 네트워크에서 어떤 자리가 만들어지는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로 인식되기 어렵습니다.
기득권이 선점한 자본, 인프라, 네트워크. 이것들은 AI가 대중화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AI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곳들이 그 기술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활용하며 격차를 벌릴 수 있습니다.
기술의 도입이 저절로 기회의 균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역사가 이미 여러 번 보여줬습니다. 제도적으로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역차별’이라는 만만치 않은 저항을 뚫어야 한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PC방 옆 자리에서 스페셜포스를 하던 사람이 "아우 이 놈의 똥컴 진짜"하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당장 PC 방 사장님한테 그래픽 카드 최신 사양이라더니 컴퓨터 뜯어서 확인시켜 달라고 할 기세입니다.
그 날따라 게임이 안 풀려서 그런지, 저도 정말로 최신 사양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이깟 게임 그저 재미로만 하기가 힘든 이유는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