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우리의 오늘
정부 과제가 쏟아지는 시기입니다.
제안서 작성이 주 업무인 제게는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철입니다.
작년부터 제미나이나 클로드 같은 AI를 활용해 제안서를 기획하고 다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더 진화한 기술을 활용해 예년보다 훨씬 수월하게 작업을 마칠 예정입니다.
요즘 뉴스나 신문에서 입버릇처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AI 3대 강국’이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수조 원의 돈을 쏟아붓고 커다란 위원회를 만든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입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3등’이라는 목표에 먼저 마음이 뺏기는 탓에, 정작 그 등수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우리가 가진 GPU가 몇 대인지, 논문은 얼마나 인용되었는지를 따지는 복잡한 숫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을 채웠을 때 우리가 맞이할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어느덧 ‘3대 강국’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커다란 전광판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국가적으로 기술에 투자하는 건 꼭 해야 할 숙제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전광판의 숫자가 너무 밝게 빛나는 바람에 정작 우리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한 대화는 불빛 아래 묻혀버리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구호가 꼭 따져봐야 할 질문들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는 셈이죠.
이 등수 경쟁 속에서 정작 우리가 챙겨야 할 알맹이가 잊혀지는 건 아닐까요?
비슷한 시기 등장한 ‘디지털 식민지’라는 말도 참 무겁게 다가옵니다. 사실 저 역시 이 걱정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주로 영미권 문화를 학습한 AI가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와 결을 무디게 만드는 문제에 관심도 많고요.
하지만 ‘식민지’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유독 아픈 구석을 건드립니다.
논리적으로 차분히 따져보기 전에 일단 막아야 한다는 뜨거운 조바심이 먼저 앞서게 만들죠.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면, 정작 머리를 맞대고 계산해 봐야 할 기술적인 실익이나 경제적 현실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결국 이 비유가 꼭 필요한 대화를 막아서는 가림막이 되는 셈입니다.
자존심이라는 방패에 정작 우리가 챙겨야 할 구체적인 대안들은 끼어들 자리를 잃고 겉돌게 됩니다.
정말 중요한 논의가 그 뜨거운 감정 아래 묻혀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견고한 전문직으로 불리는 직종에서도 ‘AGI(범용 인공지능)’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립니다.
머지않아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으면 전문직의 존재 이유가 아예 사라질 거라는 주장입니다.
지식 노동이 실제로 위협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이 말이 등장하는 시점을 보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주로 의료 서비스나 법률 플랫폼을 두고 수수료나 규제 문제를 한창 논의해야 할 때 이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니까요.
‘나중에 모든 체계가 뒤바뀔 미래가 올 텐데 지금 당장 이런 수준의 기술에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는 참 반박하기 까다로운 방패가 됩니다.
결국 당장 눈앞에 닥친 갈등과 숙제들을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커다란 보자기로 덮어버리는 셈입니다.
실체가 모호한 미래의 이름을 빌려와서 정작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구체적인 질문들을 뒤로 미뤄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 윗분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AI 도입’은 정작 실무자들이 겪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습니다.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꼼꼼히 따져보기보다, ‘AI로 효율을 높이겠다’는 근사한 말에 먼저 마음이 뺏기고 때로는 인력 감축의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현장의 맥락보다 이런 거창한 목표가 앞서나가면 정작 현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챙겨야 하는 복잡한 사정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대신, 그저 ‘AI가 다 해줄 텐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식의 압박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화려한 담론이 현장의 진짜 사정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는 셈입니다.
그 그늘 아래서 정작 피해보는 건 하루하루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2023년 한국은행은 의사와 회계사가 AI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을 것이라는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의대 지원이나 법전원 경쟁률은 식을 줄 모르고 여전히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한쪽에서는 ‘AI가 못 하는 일’을 찾아 도배나 배관 같은 기술을 배우러 간다는 젊은이들의 소식도 들립니다.
누군가는 내 일이 아니라고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는 ‘AI 시대 살아남을 직업’이라는 말 한마디에 인생의 경로를 바꿉니다.
이렇게 기술이 담론으로만 떠돌며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기술의 진짜 모습을 살피기보다 각자의 살 길을 찾기에 급급해졌습니다.
담론이 일상을 흔드는 사이에 우리는 기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묻기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먼저 잠식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AGI라는 개념을 두고 그것이 언제 출현하는지, 인간의 지능을 닮았느니 아니니 논쟁하지만, 시원한 답은 없습니다.
실상은 우리가 ‘지능’이라 부르는 것조차도 명확한 정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지능을 모방했다는 이름만 세상에 먼저 나와 우리 일상의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실체 없는 이름은 이미 우리 삶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자리를 뺏는 괴물로 또 누군가에게는 주가를 띄울 재료로 사용되곤 하죠.
저마다 다른 의미로 그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는 사이, 정작 기술이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피는 시선은 조금씩 무뎌져 갑니다.
결국 ‘AI’라는 이름이 거창해지고 화려하게 빛날수록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이름뿐인 담론이 떠다니는 사이 우리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쌓아 올린 진짜 경험들은 소리 없이 묻히고 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안서 작성 시간이 줄어든 만큼 제 일이 줄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십 장, 수백 장을 일일이 다 작성해야 하는 부담은 사라졌지만, 그건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제안서의 콘텍스트를 풍부하게 채우고, 구현해 낼 수 있는 협업 파트너를 찾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명함첩을 뒤지고, 일면식도 없는 업체 대표 이메일을 찾아 메일을 보내고, 직접 만나 의견을 조율합니다.
올겨울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느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서 사람 찾아 돌아다니느라 발바닥이 남아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