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에게 두 발 자전거를 가끔 가르칩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르치는 건 아니고 안 넘어지게 붙잡아주는 정도입니다.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라는 사람도 있고, 저도 어릴 때 도랑에도 빠져가면서 배웠거든요.
페달을 밟아도 도통 앞으로 나가지를 않습니다.
"딸, 아직 네가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래. 밥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해야 해."
올해 2월 고용 통계가 나왔습니다.
전체 고용률은 61.8%입니다. 2월 수치로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뒤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OECD 기준 15~64세 고용률도 지금껏 봐온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같은 달 청년층 실업률은 7.7%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2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청년 고용률은 43.3%로 1년 전보다 떨어졌고 22개월째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전체 고용은 사상 최고를 찍는데 청년 고용은 22개월째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 이질적인 두 숫자가 지금 한 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걸 보는 눈길은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뉩니다.
경기 탓이거나 청년 탓입니다.
"건설업과 제조업이 부진해서"라거나 "요즘 청년들이 눈이 높아서"라는 식이죠.
산업별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달에만 28만7000명 늘었습니다. 30대도 8만6000명 늘었습니다. 20대 취업자만 16만3000명 줄었습니다. 같은 건설업 불황, 같은 제조업 침체 속에서도 60대는 취업했고 20대는 못 했습니다.
사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할 나이의 청년 일자리만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이걸 두고 "AI발 노동시장 변화는 해고가 아니라 채용 감소를 통해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을 내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적인 테두리와 사회적 시선이 문을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대신 새로 뽑지 않습니다. 그 조용한 선택의 무게가 청년 쪽으로 쏠립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올해 2월 펴낸 보고서에는 예상과 다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챗GPT 출시 이후 AI 영향을 많이 받는 직종의 청년 고용은 오히려 조금 올랐습니다. AI가 일자리를 직접 빼앗는다는 증거는 아직 숫자로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같은 보고서에서는 '2026년 1월,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고용이 갑자기 크게 줄었는데 이 보고서는 작년까지만 분석 대상이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1월 한 달에만 9만8000명이 줄었는데 2013년 이후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갈수록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숫자가 따라잡기 전에 현장에서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걸 '연차 편향적 기술변화'라고 부릅니다. AI는 업무 전체를 뺏어가는 대신 초기 과정, 루틴이라 부르는 일들을 야금야금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서 초안 작성과 자료 정리, 기초 코드 작성과 데이터 입력, 반복적 고객 응대 같은 것들입니다.
그 업무들이 공교롭게도 신입이 맡던 일들입니다.
경력 10년차 개발자가 AI를 쓰면 업무 능력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신입을 새로 뽑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신입을 뽑지 않는 건 당장 기업에겐 달콤한 선택입니다. 가르치는 비용은 아끼고 이미 완성된 효율만 누리면 되니까요. 그 달콤한 선택들이 쌓이면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문이 닫힙니다.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지난 3년간 줄어든 청년층 일자리의 98.6%가 AI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서 생겨났습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AI를 갖춘 시니어가 신입의 자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고용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거죠.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 쉽게 말하면 눈대중으로만 전해지는 노하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거나 매뉴얼로 옮길 수 없고 경험을 통해서만 쌓이는 지식입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식이죠.
AI가 잘 하는 건 주로 말로 옮길 수 있는 지식입니다. 매뉴얼로 쓸 수 있는 것, 데이터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규칙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맥락을 읽고 관계를 조율하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눈대중은 아직 AI가 잘 못합니다.
그래서 경력자의 일은 AI로 더 강해지고 신입의 일은 AI로 사라집니다. 이 엇갈림이 연차 편향이라는 구조를 낳습니다.
여기서 조금 다른 각도로 물을 수 있습니다.
신입이 하던 그 일들이 사실 조직에서 어떤 의미였을까요?
교육학자 진 레이브와 에티엔 벵거는 초보자가 핵심 업무가 아닌 주변적인 잡무를 수행하면서 조직의 문화와 방식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합법적 주변인 참여'라고 불렀습니다. 중심 무대에 서기 전에 가장자리에서부터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신입의 기초 작업이 단순히 낮은 수준의 업무가 아니었던 건 이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신입은 조직의 방식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실수를 하고 교정받고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해 가면서 눈대중을 체득해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니어도 무언가를 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가르치는 행위는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중요합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도 막상 말로 하라면 설명이 안 될 때가 있죠.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언어로 설명해야 할 때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죠?"라는 신입의 질문이 시니어의 눈대중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조직의 지식이 순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신입을 뽑지 않는 것은 단순히 고용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 전체의 순환이 끊기는 문제입니다.
신입이 없어진 조직에서 시니어는 여전히 일을 잘 합니다. AI 덕분에 오히려 더 빠르게, 더 많이 합니다. 그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쌓입니다.
소통 환경이 바뀌면 그 안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관계 방식도 함께 바뀝니다. 특정한 주고받음이 사라지면 그것을 통해 유지되던 무언가도 같이 사라집니다. 신입과 시니어 사이에 오가던 그 주고받음이 줄어들면 조직 안에서 지식이 흐르는 방향과 방식이 달라집니다.
지식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비로소 다듬어집니다. 가르쳐야 할 대상이 생길 때 내 안에 뭉쳐있던 모호한 감각들이 언어라는 형태를 입기 시작합니다. 가르칠 대상이 없으면 그 과정이 생략됩니다. 경험은 쌓이지만 언어화되지 않고 암묵적 지식은 더 깊이 암묵적인 채로 남습니다.
한국 기업 문화에서 이 문제는 질감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의 대기업 중심 공채 문화는 매년 비슷한 규모의 신입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며 굴러왔습니다. 그 신입 집단이 함께 훈련받고 함께 실수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조직의 문화가 다음 세대로 전달됐습니다. 공채가 줄고 신입 채용이 사라지면서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력직 중심의 채용은 필요한 능력만 가져옵니다. 조직의 맥락을 이미 아는 사람, 설명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효율적이지만 조직의 문화가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일과는 별개입니다.
문화는 흘러야 살아남습니다. 흐름이 멈추면 천천히 옅어집니다. 지금 한창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그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데이터처에서는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의 고용 감소를 두고 "일시적인 건지 AI 전환으로 인한 구조적인 변화인지는 좀 더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중한 말이지만 구조적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 겁니다.
AI 전환이 불러오는 변화는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와 닿고 있습니다. IMF는 한국 일자리의 절반 정도가 AI 영향권 안에 있다고 봤고 그 영향이 여성과 청년, 고학력층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고학력 청년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려던 일이 AI가 가장 잘 하는 영역과 겹치는 겁니다.
신입 없는 조직이 10년쯤 계속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지금의 시니어들이 나이 들어 빠져나갈 때 그 자리를 채울 30대 중반의 경력자들은 어디서 왔어야 할까요. 지금의 신입 자리에서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달콤한 선택들의 청구서는 보통 한참 뒤에 도착합니다. 5년, 10년 뒤에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는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당장의 효율로는 보이지 않는 조직 생태계의 회로들이 앞으로 어떻게 작동할까요?
유튜브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탈 만한 자전거를 찾아보다가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영상을 봤습니다.
"처음부터 페달을 밟으라고 시키지 마세요. 땅에 발이 닿도록 안장을 낮추고서 발로 밀면서 균형을 잡는 것부터 연습하도록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