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실 운영자에서 운영자로

나의 전산 이야기

by 노연석

나는 사실 개발자도 전산쟁이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를 해 버린 나는 요즘 사회 초년생이 겪는 입사를 위한 제2의 입시와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할 만큼 어려움은 없었던 시대였다.


그 시절도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년은 더 나는 공돌이였다.

학교를 다니며 나는 전산실에 자주 들락거렸지만 전산에는 정말 재능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적응하지 못하고 내 것이 되어 주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있는 COBOL, FORTRAN, BASIC 이런 프로그램들을 배우면서 도대체 존재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뭐? 이걸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그만큼 나는 프로그래밍이라는 것, 코딩이라는 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늘 낯선 상대였다.


조금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난 공돌이였다. 하지만 공돌이라도 프로그래밍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 세상의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언어 외에도 공돌이를 위한 언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활용해야 하는 또 다른 세상의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들은 Matlab으로 시작하여 VHDL과 같은 언어들을 다뤄야 했다.


컴퓨터는 내 운명?

입사 후 발령을 받은 사무실 옆에는 전산실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가 있었다. 그 방은 90년대 초반이지만 늘 빵빵하게 에어컨이 켜져 있었고 방의 중앙에 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우로 늘어서 있는 테이블 위로 낯설기 만한 컴퓨터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들일까?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컴퓨터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랐다. 하지만 모니터와 본체가 있으니 컴퓨터라는 정도는 알아차렸다. 나와는 인연이 없는 물건들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발령 후 4주 합숙 교육에서 그 컴퓨터들과 함께 업무에 필요한 기술 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이 끝나고 난 후 난 그 방에 있는 컴퓨터들을 유지 관리하는 운영자가 되어야 했다. 교육받은 내용은 컴퓨터 관리하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지만 그 컴퓨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로 전산실의 운영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어쩌면 허드레 일 같은 업무였다.

사실 그 업무의 담당자로서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 일로 일한 어떤 이슈들도 발생을 하지 않았다.


그 방의 컴퓨터들의 정체는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PC(Personal Computer)가 아닌 UNIX OS가 설치되어 있는 Workstation이라고 불리는 컴퓨터들이었다.


나도 전산 쟁이가 되기 전에 본업은 있었다.

나의 일 상은 그 컴퓨터들과 늘 함께 해야 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전산 쟁이가 아니었다. 그 컴퓨터들로 우리 부서원들이 하는 일들은 회로, 반도체를 설계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하는 일들이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PCB(Printed Circuit Board)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PCB는 각종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전자부품들이 잔뜩 꽂혀있는 board이다 그 board에는 부품과 부품을 연결해 주는 구리로 선을 그린다. 그 선을 통해 전기가 흘러 부품과 부품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 준다.

물론 PCB board에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설계를 한다.


고등학교 때는 사실 이런 선을 그리는 일을 만능 보드에 부품을 꽂고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납땜이라는 것을 해가며 수작업으로 연결을 하여 동작할 수 있게 만들었고, 딱 한번 실제로 PCB 기판에 유성펜으로 선들을 그리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떤 액체에 담가 내면 선이 그려지지 않은 곳은 산화시켜 날려 버리는 구식의 방법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딱 한번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가 전산실의 운영자로 일을 하며 사실상 전산쟁이,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컴퓨터 운영을 위한 코딩도 필요했고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코딩은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계로 던져지다.

그 코딩은 C언어라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그동안 또 접해보지 못한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 난 잘 해내지는 못했다. C언어와의 전쟁은 몇 년에 걸친 후에야 조금 코딩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WWW(Word wide Web)이 세상에 나타나던 시절 나는 C언어로 CGI프로그램을 코딩해야 했었다.

※ CGI: Common Gateway Interface(Web-Database or File 등과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한 통로가 되는 프로그램, 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고 저장하면 데이터베이스로 작성한 내역을 저장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쉬게 이해가 될 것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전산실 운영자로 정기적으로 컴퓨터를 점검하고 관련 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고 컴퓨터들이 이상이 없이 운영되도록 관리를 했고 더운 여름날 전산실의 에어컨 덕분에 천국 같은 여름을 보낼 수 있기도 했다. 지금이야 에어컨이 흔하디 흔한 물건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내가 4주간 들어갔던 교육장은 에어컨은 없고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을 들어야 하기도 했었다. 강의가 끝나고 밤 12시까지 과제를 할 때는 웃통을 벗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열을 식혀가며 과제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아마도 그때 여성 교육생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같다.


지금도 기억하는 나는 것은 강사는 아래와 같은 사진이 출력된 OHP 필름을 올려 화면에 띄워 놓고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맞출 수는 없었다. 아래 그림과 연관된 그것? 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때 그런 컴퓨터 회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냥 맞출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난 또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컴퓨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요즘 이 회사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인공지능 왓슨으로 유명한 회사인데 여러분도 한번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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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전산실 운영의 경험은 사실 지금도 유용하게 잘 활용이 되고 있다. 그때 시스템들은 모두 Unix였지만 요즘은 대부분 Linux를 사용하는데 이게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비슷한 계열에서 시작을 했고 안드로이드, iOS, 맥 OS 들도 사실 모태는 모두 같지 않은가라고 나는 알고 있다.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신비로움, 그리고 새롭게 배워 가는 것들

최근에 나는 과거와 같은 전산실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더 많은 서버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 그때의 경험들은 나에게 신기하리만큼 놀라운 경험을 해 주고 있다. 거의 30년 전의 일들인데 그때의 기억들은 나의 손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내 기억 속에서는 다 잊혔다고 생각했지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자 나도 모르게 명령어들이 모니터 위에 나타나고 실행되어 결과를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이 몸으로 익혀져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내 과거의 기억들에 살을 붙여 손이 덜 가도록 개발을 하고 적용하는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실행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손발이 부족한 상황으로 매일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개발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지만 마무리가 되고 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마법사와 같은 존재이다 보니 아직도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제 이런 컴퓨터들은 전산실이라는 방에 존재하지 않으며 데이터센터, 아마존 AWS, MS Azure, Google 등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제공하는 가상의 머신을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불하고 이용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컴퓨터가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관리해 주어야 한다. 요즘에는 각종 모니터링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모든 것이 편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 운영자들에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집에 있는 컴퓨터를 오랜만에 사용을 하려다 보면 잘 작동을 하지 않는 경험 그리고, 자주 사용하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니 점점 느려지고 각종 광고 창들이 난무하는 컴퓨터를 만나게 되는 이유는 관리를 해 주지 않음에서 오는 당연한 현상들이다.


회사는 컴퓨터라도 백신도 설치하고 외부의 공격을 막고 내부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보안 프로그램이나 필수 프로그램들 외에 설치를 제한하는 등의 관리 등을 하고 그러한 솔루션들을 도입하고 적용한다. 이런 보안 프로그램들은 업무의 생산성을 현저히 낮추지만 보호해야 할 자료가 많은 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는 필수로 적용해야 하는 사항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이런 보안 솔루션을 적용하고 정보를 보호하는데 별도의 팀을 구성하고 사내외로 날아다니는 데이터의 패킷들을 분석하고 차단하고 때로는 부정의 현장을 잡아내기도 한다.


변한 것은 컴퓨팅 환경이 클라우드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보보호를 위한 보안은 점점 더 강화되어가고 개발자들은 회사의 보안 정책으로 막혀버린 인터넷 세상으로 가는 길로 인해 개발 툴 하나 설치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 자연스럽던 것이 현재는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하고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뿌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이 처음엔 부족한 것들이었지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 가며 완전체로 만들어 지고 발전해 가며 그 뿌리까지 건드리는 것은 쉽지가 않다. Windows도, 맥 OS도, Unix도 많이 변화한 것 같지만 기본적인 동작에 편의성, 안정성, 보안성 등으로 무장을 했을 뿐이지 과거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다.


과거의 나는 지금 보다 못하지만 과거의 내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업그레이드시켜 지금의 내가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그 뿌리를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흐르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개발자이고 전산실 운영자다.


Cover image : Image by Elchinato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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