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가 않다. 무언가 내게 익숙한 것을 단칼에 끊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끝을 보기 위한 마음 가짐은 단단히 가져야 한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술을 마시지 않는 술을 회피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술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통해 완벽한 이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슬픈 이별이 아닌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다.
술은 내게 있어 독약과 같다고 믿어야 한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술잔 한잔을 사람들의 유혹에 나약해진 마음으로 마실 수도 있지만 분명히 한잔은 두 잔이 되고 두 잔은 어느새 한 병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모금, 한잔부터 완벽하게 차단을 하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에 이전과 다르지 않은 후회로 가득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술, 담배, 마약과 같은 종류의 향응제들은 한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중독된 삶은 수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술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불필요하게 소비하게 된다.
술자리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당신은 지난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저녁 식사를 시작으로 시작한 술자리는 늦은 밤까지 지속되는 일들은 너무도 흔하다. 1차, 2차, 3차... 사실 그것으로 끝난 다고 하면 괜찮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고 회포를 풀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을 수도 있으니. 그러나 그런 술자리에서 스트레스가 날아간 적이 있던가? 나의 고민들이 해결되었을까? 대부분의 술자리에서 쏟아내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알코올의 증발과 같이 사라져 버리고 차라리 이야기를 꺼내지 말 것이라는 공허함만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알면서도 그런 일을 반복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술, 담배 아이들에 손에 대지 못하게 하게 하는 것을 매우 당연시한다. 당연히 아이들이 그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도 미성년자가 구매가 불가능하게 제도를 만들어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길거리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사람들이 아이들에 눈에 각인이 된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주문하고 술에 취해서 아들에게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 내기도 한다. 일상에서 노출되지 말아야 하는 장면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노출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보고 들은 대로 커간다.
금지시키려는 것에만 급급하다. 아이들이 부모, 주변 사람들로 보고 배운 것들은 성인이 되어서 마치 수년 동안 해 봤던 것처럼 익숙하고 죄의식이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된다.
요즘은 회사에서도 회식자리나 술자리를 강요하지 않는 문화라 MZ 세대는 그나마 그런 문화를 덜 접하고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현을 할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매일 술을 드시는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다. 그것은 그냥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빨리 어른만 되어 봐라 나도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다 해 볼 거라는 자신과의 무의식적 약속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무의식의 약속은 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게 된다.
회사에 입사 후에 벌려지는 회식 자리에는 늘 인사불성, 고주망태 그것도 부족하여 폭군으로 변해 기물을 파손하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 속에서 나도 쓸데없는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그리고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면서 알고 올 중독자가 된 것이다.
중독의 시작은 한번, 두 번의 경험하는 단계를 쌓으며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 내 몸의 일부인 듯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고 말고 세상을 더 많이 알아가면 갈수록 부딪히는 갈등, 고뇌, 고통과 같은 힘겨움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술뿐이라는 고찰의 결과로 결론을 지어 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흘러서 뒤돌아 보며 나는 왜 술에 절어 살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차라리 이런 생각을 좀 더 어린 나이에 했더라면 좀 더 빨리 술을 끊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 수도 없이 절주를 하겠다고 했던 다짐이 깨진 것처럼 깨져 버릴 수도 있다.
현재 진행 형이다.
그래서 이 것이 딱 맞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거창하지 않은 나름의 방법을 통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습관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나는 술이 생각나면 옥수수 차 음료를 마신다.
그런데, 이것도 며칠 하다 보니 좋기는 한데 옥수수 차의 중독되는 것이 아닐까란 걱정이 든다. 이것도 많이 마시면 좋지 않을까? 뭐 옥수수 차 정도야 중독이 되면 어떤가? 알코올보다는 백만 배는 괜찮지 않을까?
나만의 방법에 다니엘 슈나이버가 술을 끊기 위해 했던 마법의 주문을 더하려고 한다. 그가 썼던 "어느 애주가의 고백"에서 그도 술을 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 글의 제목에 있는 "Just for today"를 실천했다.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도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참아내고, 내일 또 그런 위기가 오면 다시 오늘 하루를 넘기면 성공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술을 끊어갔다.
이것도 정말 좋기는 한데. 사실 하루를 보내며 수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애인과 싸운 후 헤어져서 일 수도 있으며, 어제 산 주식이 폭락을 해서 일수도 있다. 수도 없이 일어나는 반갑지 않은 일들과 또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축배를 들고 싶은 일 모든 상황이 나를 유혹한다.
그런 순간순간에 찾아오는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오늘 하루만을 외쳐도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힘겨운 "이 순간만" 넘기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의 순간순간이 오늘 하루만을 가득 채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음에 감사해할 것이다.
술을 끊는 방법은 금주, 절주가 아니다. 단주이다.
정말로 매정하게 끊어 버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 나의 이런 믿음은 13년 전 담배를 끊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물로 그때도 수도 없이 담배를 끊으려다 실패한 적이 많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성공했다.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아주 단순했다.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 공간이 점점 사라져 갔다. 사무실에서 건물 밖으로 건물 밖 곳곳에서 건물 밖 지정 구역으로 어떤 땐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지하 벙커 같은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했다. 너구리 굴이 따로 없었다. 너구리 굴에서 살기는 싫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담배를 피우고 난 뒤 나에게 묻어난 그 향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인지 한 후로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들이 전부였다. 향기 없는 사람이 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술도 담배처럼 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을 한다.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기고 하루를 한주를 한 달을 그리고 한 해를 보내며 내 안에 찌든 알코올의 잔해들을 말끔하게 해독시키고 나면 더 이상 물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고 물들기를 거부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무언가 해 내려고 할 때 한 가지 더 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나는 술을 끊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술을 권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술자리가 생기면 가능한 피하고, 가게 되더라도 옥수수 차나 냉수를 마시며 한 순간 한 순간을 넘기며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반복하여 습관으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같는다면 술을 끊기 위한 나만의 방정식은 완벽하게 동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