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달라진 공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 사람이 떠났다. 내가 몸 담고 있은 모임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다. 그곳에서 나는 고문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왜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도 하지만 나의 무관심이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그 상황을 방관해야 하는지 갈등한다.
지나침의 결과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어선다. 한두 번 넘어서는 것에 대부분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상대방을 믿는다. 믿는 도끼에 발을 찍히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갈등은 시작되고 내적 갈등은 외적 몸부림으로 표출이 된다. 주로 언어라은 도구로... 상대와 평행선을 달리다 이별을 고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무관심의 사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어. 설마가 내가 무관심했던 시간 속에서 지나침으로 인해 만들어졌던 과거가 지금 나에게 현실로 다가올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나에게 던져 보지만 나에게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상상 속에서 혼자만의 답을 내린다.
방관의 외면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괜한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 같아 나의 의심이 확신이라는 것으로 만족하고 개입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방관이고 무관심했던 순간을 덮어버리려는 외면이다.
이별 관람
내가 무관심했던 순간, 방관했던 순간들은 그저 나의 자책일 뿐이다. 내가 몰랐던 지나침의 순간에 있던 사람들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마음을 돌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다 놓을 수도 없다. 즐거웠던 과거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이별을 고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 모두 지나치면 불꽃이 튀기 마련이다. 대부분 제자리로 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선을 넘어서는 도구는 말이다. 서로가 느끼는 친밀도는 다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이별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저 그 순간을 생각 없이 바라만 본다.
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평행선을 걷고 싶지 않다면...
지나침, 무관심, 방관이 쌓이면 무너진다. 무너지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모임이라는 공동체다. 지나침의 결과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모두가 전염이 되고 쇠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공동체의 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