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김연수 작가의 오랜만의 신작을 읽었을 때 글썽이는 눈물에 중간중간 책을 덮어야 했다.
최근 몇 년간은 '한숨도 못 잤지만 잠시도 깨어있지 않았던' 수많은 밤들을 지나오는 중이었고', 중년의 우울감과 함께 불면은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중이었다. 그때 읽은 이 소설집의 '시간'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 번의 삶을 살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첫 번째 삶, 과거를 기억하며 거꾸로 진행되는 두 번째 삶, 그리고 두 번째 삶이 끝나고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세 번째 삶. 그런데 이 세 번째 삶은 첫 번째 삶과는 다르다. 그 안에 미래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51페이지)
내가 다다를 아름다운 미래를 '기억'하는 것 만으로 현재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얼핏 기독교의 교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현재의 나'이고 이 마음 하나로 바닥에 주저앉던 나를 일으킬 의지처가 되어준 말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로 생각을 멈추고 지내던 요즘, 다시 나를 추슬러야겠단 생각이 들던 오늘 동료의 포스팅을 보고 이 소설이 다시 생각났다. 연신 비 내리던 연휴였지만 내일 다시 출근을 앞두고 심란한 밤에 다시 책을 펼치고 접어놓은 부분들을 읽어 나갔다. <청춘의 문장들>을 읽던 30대에도 그랬지만, 생각과 고민의 결이 비슷한 느낌의 글을, 그것도 훌륭한 문장으로 읽어 나가다 보면 받는 위안과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나에게 어쩌면 '세컨 윈드'는, 오늘 김연수의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