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해야 답이 나온다
"축제의 글로벌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복잡성이 추가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축제를 경제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치우쳐져 축제 본연의 기능보다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가 먼저 이야기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축제는 기본적으로 놀이문화이다. 한 사람에게 의미 있고, 즐거웠던 놀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모여 크게 놀이하게 된 것이다.
또는, 축제는 찾아서 모으는 과정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축제는 뭐든지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무엇을 모으고, 어떻게 모을지? 그리고 왜 모아야 되고, 모여서 무엇을 할지? 에 대한 고민이자 과정의 창조물이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글이다. 축제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기본 개념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지역축제나 이벤트들을 살펴보면, 최우선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모으기보다는 멀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자 하고, 가까이 있지 않고 내 것이 아닌 것들부터 모으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세계적인 축제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 원래 정석대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가까이에 많이 있는 것들을 모아내고, 내실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 내 것이 아닌 것들보다. 내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모으는 모습을 볼 있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가까이에 있는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모으다 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한다. 단지,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있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이용하여 모으고자 하면서 역시 문제가 발생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았다고 하여도, 가까이서 온 사람이든 멀리서 온 사람이든 축제가 끝나고 내 사람이 되지 못하고. 1년 후에 다시 한번 축제를 진행한다 해도 외부적인 요인에 의존도가 생겨서 결과적으로 허황된 허물 뿐인 신기루 같은 축제가 될 수 있다.
축제는 일탈의 문화이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함으로써 정체된 일상을 벗어나서 단기간의 활동으로 삶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일탈의 문화는 기존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탈행동들을 유발하고, 그러한 행동들이 허용되어야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축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축제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해석되는 법의 테두리는 일탈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축제가 존재할 수 있도록 보호하지 않는다. 특히, 민간기업이 진행하는 이벤트의 경우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제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한국에서 축제를 하는 사람들이 격고 있는 상황이다.
축제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일탈의 문화를 자기 검열하여서 현실과 타협하여 축제를 진행한다. 이로서 자기 검열된 일탈의 문화는 역설적이게도 좀 더 자유로운 일상이 되는 적당한 일탈이라는 결과물로 존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축제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불법을 허용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의 축제를 성장시키고자 하면, 좀 더 유연한 법 해석과 행정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에는 우리가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존재한다. 그러한 이벤트에 삶의 의미를 두고 축제를 하는 사람도 있고, 금전적 이득을 위해서 축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입장으로 축제를 하고 있다 하라도, 축제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금전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열정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축제라 화자 되는 해외 음악축제의 경우 1일 4~5만명의 관객이 30~60만원의 티켓 가격을 당연히 여기는 반면, 한국의 경우 1일 5~15만원으로 형성되어 있고 관객 규모도 1~2만으로 적은데 비해, 지출비용의 경우는 비슷하다. 게다가 국내 관객들은 그 해외 음악축제를 왜 한국에서 못하냐라고 이야기한다. 향유자가 향유하고자 하는 만족은 높아졌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금전적 지불에는 인색한 곳이 한국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축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봐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해외시장에서의 현재의 티켓 가격 형성에는 주최 측과 관객과의 오랜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축제의 매출과 지출을 공개함으로써 축제를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한 티켓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그것에 비해 한국의 축제의 경우 그러한 소통이 부족하며, 한국 기업들이 축제를 마케팅의 목적으로 하면서 티켓 가격을 현저하게 낮춰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 점도 지속 가능한 시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축제 진행 환경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행정적 지원이 원활하지 않고, 금전적 가치 인정이 미약하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경험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동시대에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들이 좀 더 법적으로 보호받고, 좀 더 유연한 행정적 지원을 받고, 금전적 보상을 받아 지속 가능하고 성장 가능한 놀이 문화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축제라는 꿈을 꾸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차적인 목적으로 축제와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닌, 축제가 존재해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인 함께 즐기기 위한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세계적인 축제가 될 것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축제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시작은 그저 놀기 위해서 탄생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어린이가 되어 목적 없는 놀이를 위한 이벤트이다. 모두가 순수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하다 보면, 어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목적은 보너스로 보상받게 되지 않을까?
기본에 충실한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