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치가 쌓여야 레벨업!
저는 수원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촬영이 있는 날에는 제가 촬영 목적으로 사용합니다만,
저의 촬영이 없는 날에는 셀프 스튜디오로 대관이 가능합니다.
크게 홍보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원에 성인이 이용할 만한 스튜디오가 많지 않아
알음알음 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당황스럽거나 안쓰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벨렐레 벨렐레 벨렐레~~ (네 전화벨 소리입니다)
나: 네 스튜디오입니다~
고객: 저 스튜디오 대관 좀 하려고 전화했는데요~
나: 아 네~ 며칠 몇 시부터 사용하실 건가요?
.
.
.
(중략)
.
.
.
고객: 저 그런데요. 제가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데
조명 세팅이나 이런 것들을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나: 네 그럼요~ 카메라만 가져오시면 나머지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고객: 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분들이 도착하고 난 후부 터입니다.
나: 어떤 촬영을 하시는 거예요?
고객: 아 저희 다음 달에 결혼식인데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도 필요하고...
(망했다)
사실 여기부터 망했습니다.
예식 한 달 전에 모바일 청첩장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1. 사진 촬영-보정-결과물 전송-모바일 청첩장 제작-배포
이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생각지 않은 것.
2.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을 둘이 와서 삼각대 걸어놓고?
두 분 다 프로 모델이라면 걱정 없겠지...
웨딩 사진을 최하 3개월~6개월 전에 찍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 사진들로 액자, 앨범, 모바일 청첩장 등에 사용하게 되는데
촬영-보정-결과물 인수까지 최하 한 달은 기다려 줘야 합니다.
(단순히 사진 데이터를 받는 데까지의 시간입니다. 액자, 앨범, 모바일 청첩장을 제작하는 시간은 별도로!)
다른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분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가졌습니다.
(모두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 / 부 / 분 )
1. 남자 친구(신랑)가 DSLR을 가지고 있다. (기종은 중요하지 않다)
2. 여자 친구(신부)랑 놀러 가서 몇 번 사진을 찍어준 경험이 있다.
3. 조리개 최대 개방으로 배경 훅훅 날려준 사진 찍으면 남들이 잘 찍었다고 칭찬한다.
자! 이분들이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제일 난감해하는 부분 몇 가지입니다.
1. 어? 사진이 왜 이렇게 하얗게 나오지?
2. 어? 사진이 왜 잘려서 시커멓게 나오지?
3. 어? 왜... 어? 왜... 어? 왜...
일반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도 사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때문에 스튜디오의 조명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사진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분야가 '스튜디오 조명'이었습니다.
빛의 각도, 빛의 세기, 빛의 성질, 빛의 크기(세기와는 다릅니다), 빛의 색, 빛의 왜곡, 빛의 간섭 등
그리고 가장 무서운 빛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와의 싸움.
스튜디오 조명뿐 아니라 일반 조명, 그리고 주광(햇빛)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촬영자가 이 모든 상황을 입맛에 따라 만들어 촬영을 해야 합니다.
배경에 맞는 조명 세팅, 연출하고자 하는 사진에 따른 세팅값,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는 숙련도.
조명기기의 세팅값 변화에 따라 카메라 세팅값은 어떻게 달라지며,
그 달라지는 값에 따른 결과물은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평생 단 한번뿐인 소중한 결혼식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를 내가 직접 예쁘게 찍어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스튜디오를 대관하여 셀프로 찍어주겠노라고 용감하게 덤비는 것은 너무 무모합니다.
스튜디오 조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나서 덤비세요.
'셀프 스튜디오 대관'은 말 그대로 스튜디오를 빌리는 것입니다.
작가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죠.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와 용기는 정말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준비 없이 도전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이지요.
여자 친구와 셀프 스튜디오를 두 번 정도 방문하셔서 이런저런 사진을 함께 찍어보세요.
저희 스튜디오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내공은 늘어갑니다^^
대부분의 스튜디오에서는 손님이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줍니다.
'이런 사진을 찍고 싶은데 조명이랑 카메라 세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다음 메인 촬영을 하세요.
'역시 울 오빠 짱이예요!' 소리 듣게 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50대 초반 정도의 남자분이 셀프 스튜디오를 예약하셨습니다.
인원은 본인 포함해서 3명이라고 하시더군요.
날짜가 돼서 손님들이 도착을 하셨는데
예약하신 분은 아빠셨고
모델이 되어주실 두 분은 따님과 그 남자 친구였습니다.
딸과 딸의 남자 친구 커플사진을 찍어주시는 멋진 아빠셨습니다.
제가 뭐 특별히 말씀 드릴 필요도 없이 조명 세팅도 척척! 하시더니
이내 가장 중요한 작업을 하고 계시더군요.
'자~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자, OO이(남친)가 더 꼬옥 안아줘야지~'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것도, 얼굴이 작아 보이는 것도, 배경이 예쁜 것도 아닙니다.
찍는 사람이 행복해질 정도로, 찍히는 분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인생 샷은 그렇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