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하브루타하기
거의 모든 동화는 어른이 창작하여 어린이가 소비하는 문학입니다,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며, 독자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즉, 모든 동화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려는 시도입니다. 근대사회 이전의 서양 철학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에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보는 등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기에 어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했습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아동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태동되었고, 보다 더 정서적으로 보다 더 정제되어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방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까지 전해내려온 동화들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소비하는 동화 중 나보다 힘 없는 사람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부모님을 힘들게하고 못되게 굴면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야기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편법을 사용했을 때 얼마나 행복한 마음이 드는지(거짓말) 말해주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여 승리를 거머쥔 이야기, 지혜와 슬기로 위기를 대처하는 이야기, 희생과 헌신을 하여 결국에는 보상받는 이야기, 사랑과 용서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이 결국 대접받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동화에는 세대가 달라져도, 공간과 환경이 달라져도 결코 변하지 않고 존중받는 가치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을 절대선絶對善 이라고도 하며 자연법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어휘로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와 동화를 읽을 때, 양육자께서는 그 절대선 위에서 동화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교훈을 인지하시고, 그 맥락에 따라 요약하셔서 아이들과 동화를 나누시길 추천드립니다. 다툼보다는 화해를, 미움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삶을, 혼자보다는 함께의 가치관을 아이들과 나눌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훈에 따라 요약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질문을 찾는 길을 조명해줍니다. 특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셔서 동화작가의 절대선을 탐구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도깨비와 혹부리영감은 전형적으로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는 전래동화입니다. 혹이 달린 노인 두 명이 등장하는데, 그들중 하나는 착하고 하나는 나쁘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시작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비한 힘으로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혹 두개라는 벌을 받게 되지요. 이제부터 잠깐 전래동화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 옛날 옛적에 혹부리영감 둘이 살았어요.
1) 혹은 얼마나 컸을까?
2) 얼굴에 혹이 달려있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외모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사람의 자존감에 상처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혹이라는 불리한 부분이 작용했지만 한 사람은 착한 성품으로 살아갔고 또다른 사람은 심술궂게 살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다른 존재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한 명은 성품이 착했고, 또다른 한 명은 심굴궂게 나빴대요.
1) 착한 혹부리영감은 이웃,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2) 나쁜 혹부리영감은 이웃,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위 두 질문으로 선한 행동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슬픔을 만난 사람에게는 위로를 해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도와주며, 기쁨을 만난 사람에게는 축하를 해주는 것이 선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배워나가게 됩니다. 유아기에 만난 선함은 반드시 그 아이의 남은 인생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 도깨비들은 착한 혹부리영감의 노래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졸랐어요. 착한 혹부리영감이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전에 혹에서 노래 주머니라고 생각한 도깨비들은 금은보화를 가득주고 착한 혹부리영감의 혹을 떼어갔어요?
1) 도깨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2) 무슨 노래였길래 도깨비들이 감동했을까?
3) 도깨비들은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
독재적인 군주정치 하에 살던 옛날 사람들에게 ‘사람’은 결코 완전한 심판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생각과 욕심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옛날 이야기에서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도깨비, 호랑이, 산신령 등 신비적인 존재로 묘사되곤 했지요. 실제로 그런 신비적인 존재가 세상의 어그러진 부분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존재가 결국 나의 행동을 심판한다는 생각은 모든 행위를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비적인 존재가 결국 모든 것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을 조심했지요. 지금 사회가 혼미한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감시자, 심판자에 대한 인지가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 그 곳에서, 나 자신은 나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깨비라는 신비적인 존재를 통해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이 결국에는 참된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깨비와 혹부리 영감으로 간단한 예를 들어 보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결코 절대적이지 않으며 양육자께서 각자의 해석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화는 절대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온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진공이 아닌 중력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전부 자라온 문화와 환경을 통해 세계관, 가치관을 구축해나갑니다. 만약 동화 작가가 어그러진 환경 속에서 절대선을 마주하지 못한채 성장했다면 그는 잘못된 세계관을 형성했을 것이고 그 사고는 그의 문학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탄생 신화입니다. 탄생 신화는 당시 왕이나 영웅의 출생에 알이나 늑대의 이야기를 첨가해, 계급사회가 일반이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지배계층의 통치를 정당화하여 국민들이 착취를 당연시 여기도록 만드려는 의도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런 신화들은 사람들의 구전에 오르내렸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소비되지 않지요. 때때로 아이들과 나누는 동화 속에서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사회체제의 차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맞지 않는 가치관 또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소재가 등장한다면 편집과 재가공을 통해 아이들과 나누시길 부탁드립니다.
동화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동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가 당시 석학을 어린이들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열이 없듯이 시대와 시대도 그렇습니다. 다만 시대를 건너 옛 선조의 지혜를 만날때 좋은 다리가 필요합니다. 양육자께서 아이들의 좋은 교두보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양육자만의 가치관이 필수적입니다. 유태인들이 하브루타에 능한 이유는 그들만의 명확한 세계관이 그들의 삶을 세워나가고 있기때문입니다. 절대선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에 접근하는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의 인생에 잊지 못할 이정표를 세울 시간을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앞으로 동화에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참고하셔서 소양을 축적하고, 가치관을 세워나가는데 이용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