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선 1 : 사랑
16세기 문자를 예술로 끌어올린 셰익스피어가 사랑을 그려낸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은 가장 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이며 어떤 장르에서도 빠질 수 없는 감정입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분석해보고 정의하려했지만 아직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사람의 모든 행위를 주관하는 목적인 동시에 원인에 가깝습니다. 사랑이 사람에게 슬픔을 준다면 그 슬픔으로 인한 행위를, 기쁨을 준다면 기쁨으로 인한 행위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같은 감정을 느꼈다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히 구별되는 행위를 표출합니다. 누군가는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인내와 성찰로 깊은 인간성을 자아내기도 하지요.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사랑이 준 슬픔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화, 오늘 우리가 나눌 인어공주를 창작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안데르센은 연극배우를 꿈꿨지만 이 또한 실패하며 힘든 20대를 보냅니다. 30살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해 38살에 유명세를 얻기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에게도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사랑의 대상이 남자였다는 설도 있고 일방적인 연모였다는 설도 있지만 저는 서로 사랑했던 여자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본질은 실연의 아픔이기에 본문에서는 다양한 설을 일축하여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안데르센을 버리고 귀족과 결혼해버리고 맙니다. 지금부터, 그때 찾아온 절망을 녹여낸 문학 인어공주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인어공주는 바닷속 왕의 막내딸 인어공주가 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한 땅 위의 왕자를 구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녀는 바닷속에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공주였습니다. 하지만 왕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자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던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꼬리는 오히려 왕자와 가까워지는데 방해요소만 될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꼬리를 다리로 바꿈으로써 왕자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끼워맞추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대가를 하나 치르는데, 바로 언어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뼈대가 기초를 구성하고 피부와 근육이 그것을 덮고 혈액이 순환하기때문만은 아닙니다. 겉모습은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언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언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아를 형성합니다. 어떤 사람의 첫인상이 좋지 못해도 그가 계속해서 선한 말과 선한 행위를 한다면 호감을 갖게되는 것처럼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닌 언어입니다. 안데르센은 언어를 버리는 인어공주의 선택을 통해 겉모습을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표현합니다.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사람의 시선에 맞추다가 결국 왕자의 사랑을 얻지못하고 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언니들의 도움으로 왕자를 제거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사라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꼬리를 잃었으며, 왕자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잃을 위험에 처했던 것입니다.
만약 안데르센이 인어공주에 자신을 투영시켰다면, 사랑을 얻기위해 자신을 바꿔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헛됨뿐인지 그는 직접 경험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인어공주에 자신의 연인을 투영했다면, 가장 그녀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자신을 버리고 귀족에게 시집간 연인에 대한 야속함과 안타까움을 묘사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양쪽 어떤 경우든지 마지막에는 기대했던 행복은 온데간데 없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무만이 남아있습니다. 인어공주에서 안데르센은 사랑에 대해 섣불리 정의하려하지도 않고,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인지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사랑의 조건 한 가지를 말합니다. 바로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가꿔갑니다. 세상은 좋은 성적을 요구하고, 우수한 스펙을 눈여겨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고자하는 욕구를 삶의 이유로 삼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환상적 소재를 사용해 동화로 분류되어 왔을 뿐, 사랑으로 삶의 이유를 찾지만 잘못된 방법을 사용함으로 삶의 이유를 잃고 허무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그려내는 문학입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자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완전히 누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던져버리는 사랑이 그 행위자에게 얼마나 거짓되고 허탄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인어공주는 결코 유아에게 어울릴만한 동화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중학생에게 어울릴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를 동화로 하브루타하기의 첫번째 이야기로 선택한 이유는, 현실적으로 인어공주가 동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그 밖에 장난감과 인형 등 수많은 매개체로 아이들에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통제할 수 없다면 바르게 소비하는 법이 준비되어야하며 인어공주 속에는 분명 찾아내지 못한 안데르센의 바른 정신이 깃들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역사적 근거도 없는 상상 속 이야기가 수백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찾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공기의 정령이 되었음을 깨닫고, 300년동안 인간을 도우며 살면 불멸의 영혼이 될 것임을 동료 정령들로부터 알게 됩니다. 인어공주는 이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것이 안데르센이 말하고자하는 주제의식입니다. 인어공주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자 왕자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또다른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동입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치심이나 거절감이라는 타인에게 받는 상처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선을 행하고자하는 자아의식으로 행동한 인어공주의 마지막 모습은 단순한 허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와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오히려 더욱 성숙한 자아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안데르센이 실연의 아픔을 통해 인어공주라는 불멸의 역작을 창작해냈듯이 말입니다. 누군가 인어공주가 왕자와 맺어지지 못해 불쌍하다고 말할 때, 그와 더불어 슬픔을 이겨내는 선한 마음이 얼마나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지도 같이 이야기하면 더 풍성하게 인어공주를, 그리고 그 문학을 통해 안데르센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때때로 인어공주의 결말이 왕자와 맺어지는 해피엔딩으로 편집되어 배포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현상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결말을 바꾸는 것은 인위적으로 안데르센의 정서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당장 아이들이 소비하기에는 좋을 수 있지만 아이가 성장해가며 안데르센이라는 당대의 거인을 만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은 아쉽습니다. 어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할 때 인생에 의미가 있습니다. 결말을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인어공주가 앞으로 얼마나 기쁜 인생을 살아갈지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반드시 경험해야합니다. 어린시절 경험한 그 사랑이 타인의 거절로부터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상처와 거절감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 힘이 있는 아이들은 꼬리를 버리고 다리를 갖는 선택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 앞에 놓인 상처와 거절감을 이겨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