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로 하는 하브루타

흘러오는 인생을 향한 당당함, 절대선2 투지

by 마들렌


모든 역사를 투쟁의 기록이라고 정의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은,

성장과정에서 인생이 기본적으로 싸움의 연속임을 깨닫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체험됩니다. 출생지역과 부모님을 선택해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며,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살아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엄마 뱃속과 다른 낯설고 거친 세상을 마주하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혈관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던 영양소를 이제는 열심히 빨고 삼켜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게 되면 걷기라는 다음 단계를 향해 도전해야합니다. 주어진 과제가 학생의 학문적 깊이를 연마하는데 도움을 주듯이 한 사람이 삶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 위한 도전은 성숙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부모라는 절대적 존재의 무조건적인 사랑안에서 통제된 과제를 수행해온 유아시절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해가면서 더 넓은 세상 속에서 필연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불합리한 조건일지라도 말입니다. 약 8천년전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는 한낱 노예에 불과했지만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매일같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불공평한 경주라는 불편한 진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그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통해 표현합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토끼가 거북이에게 경주를 제안하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경주의 형태가 거북이에게 굉장히 불리합니다. 거북이는 수영을, 토끼는 달리기를 잘하는데, 결정된 경주의 형태는 산길 레이스입니다. 신분제가 뚜렷했던 사회에서 노예로 살던 이솝은 매일매일 자존감, 자아실현을 성취하기 힘든 불리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을 것입니다. 노예라는 극도로 불리한 출발선이 부여된 그에게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토끼로 묘사되는 지배계층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노예 이솝을 통해 승리감을 쟁취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습니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경주를 제안할 때, 토끼는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고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거북이의 승리로 끝난 경주가, 토끼와 거북이 사이에 있었던 첫번째 시합이라고 이솝은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거북이는 토끼에게 수많은 패배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불리한 규정, 수없이 경험한 패배의 기억은 거북이가 자신의 패배를 당연시 여기도록 만드는데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이는 경주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거북이는 잠시의 지루함을 달래고 승리로 자신을 조롱하고자 다가온 토끼의 제안을 거부하거나 적당히 상대하며 패배를 기다리기보다는 수십번째, 수백번째일지도 모르는 경주에 최선의 투지로 임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토끼의 방심으로 거북이는 승리하고 맙니다.



토끼가 잠들지 않았으면 결국 헛수고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춰있으면 거북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상상은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투지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작성됩니다. 토끼가 방심할지 최선을 다할지는 거북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자신이 최선을 다할지 말지는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었습니다. 거북이에게는 토끼를 앞지르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함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거북이는 자신이 생각도 못한 방법인, 낮잠이라는 토끼의 방심을 틈타 압도적인 불리함 속에서 승리감을 누립니다. 그것은 유리함 속에서 거북이를 놀려먹은 토끼가 거둔 승리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값지고 긍정적인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다시 경주하면 거북이는 또다시 패배할 것입니다. 하지만 토끼는 결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보답받는다는 삶의 귀중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예 신분이던 이솝은 귀족들처럼 좋은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지금 너무나 쉽게 펼칠 수 있는 책 한 권조차 그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재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한 이솝은 어떤 선생도, 어떤 재물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거북이의 승리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지혜를 스스로 배웠습니다. 그 이솝의 지혜는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도 전세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승자의 역사만을 기록으로 남기는 인간사의 습성때문인지, 근대사회를 거치면서 노동을 통해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체제가운데 근면이 강조되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토끼와 거북이를 조명하는 우리의 시선이 지나치게 거북이에게 편향되었다는 점입니다. 윗 단락은 ‘토끼가 만약 잠들지 않았다면?’이라는 명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잠들 수 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솝은 토끼와 거북이를 통해 거북이의 투지뿐만 아니라 토끼의 교만 역시 강조합니다. 이길 수 밖에 없는 쉬운 싸움을 걸어오는 토끼는 승리감이라는 기쁨을 너무 쉽게 쟁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승리를 자랑하고자 경주 도중 낮잠을 청합니다. 이런 토끼의 모습들은 모두 그의 교만함을 드러냅니다.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으며, 옳은 어려움보다 그릇된 쉬움을 선택하는 사람의 습성은 그를 나태하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토끼는 거듭된 승리를 통해 ‘대충해도 이기는구나’, ‘거북이정도 그냥 이기는 나는 정말 대단해’라는 교만에 빠져갔습니다. 이솝은 다른 사람을 착취함으로써 세상을 쉽게 살아가려는 귀족들이 교만에 허우적거리다가 패망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토끼와 거북이의 진짜 교훈일지도 모릅니다. 투지를 통한 승리의 역사는 아주 느리기에 관찰하기 힘들지만 교만으로 추락하는 사건은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솝우화는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본질을 꿰뚫으면서도, 아주 간결하고 재미있게 교훈을 전달하기에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중 백미는 단연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우리가 지난 글에 나눈 인어공주보다 아이들에게 훨씬 적합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거리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는 토끼와 거북이는 끝을 알 수 없는 보물상자같이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교만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토끼의 경고를, 어려움에 봉착해 실망하는 아이들에게는 거북이의 멋진 승리를 일깨워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낌없는 격려와 인내로 거북이의 투지가 움트는 아이들로 길러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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