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쾀 Feb 18. 2017

드디어 봤다, <너의 이름은>

뒷북을 울려라 둥둥둥 

드디어 봤다. <너의 이름은>.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야?'라고 놀릴 테지만 나에겐 '드디어'다.  KBS 한국어 능력시험 준비에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시험이 끝났으니 맘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후, '대세'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이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 '이토모리'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바뀌는 꿈을 꾼다. 우린 모두 어렸을 적 만약 내가 여자가, 남자가 된다면 어떨까 하고 엉큼한(?) 상상을 해본 경험이 분명히 있다. 그런 면에서 <너의 이름은>은 관객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기막힌 설정으로 영화가 전개되었다. 타키가 미츠하의 몸으로 잠에서 깨어나서 가슴을 만지는 장면은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상상이 구체화된 게 아닐까. 

우스꽝스럽지만  내가 타키였어도 해봤을거 같다...


잊히는 꿈

<너의 이름은>은 꿈이라는 요소가 잘 대입되었다. 내 경험인데 가끔 흐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난 경험이 실제로 있다. 하지만 왜 내가 흐느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간의 느낌만 남아있을 뿐. 타키과 미츠하가 꿈에서 깨어나면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어지고 누군가를 찾는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모습은 꿈의 속성을 나름 '사실적'으로 대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답답하진 않다. 꿈에서 깨어난 것이니까. 



<너의 이름은>은 이런 '꿈'이라는 요소를 교묘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보통 시간 여행 관련 영화는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뀌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점은 현재는 바뀌지만 바뀌기 전 기억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모순되다는 것이다. 과거가 바뀐다면 달라지기 전 현재의 기억도 사라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 일반적인 시간 여행 영화가 갖고 있는 모순점을 <너의 이름은>은 '꿈'을 통해서 교묘하게 피했다. 꿈에서 깨서 일어나면 꿈 내용이 기억이 안 나듯, 타키는 이전의 현재 모습도 잊어버린다. 

자고 일어나면 서로의 몸에 메세지를 남겨 놓는다 
과연 '무스비'가 존재할까

무스비(むすび), 매듭이라는 일본어다. 이어질 인연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상황에서 운석이 떨어진 뒤 8년이 지나 타키와 미츠하가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만나는 것은 정말 무스비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세상을 초월하는 '무스비'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운명을 믿고 안 믿고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시공간이 달라도 결국 매듭, '무스비'로 만난다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했던 적이 최근 들어 없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그런 따뜻했던 영화는 2015년 개봉작 <인사이드 아웃>. 늦게라도 <너의 이름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었고, 시험도 끝나서 마음이 두 배는 더 홀가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녀사냥, 당신도 가해자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