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토박이 라쿤이지
안녕, 난 대학로 사는 라쿤이라고 해. 만나서 방가방가.
난 날 때부터 여기서 살았어. 엄마가 지리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잡혀서 여기까지 왔었나 봐.
그때 날 배고 있었는데 결국 여기서 태어나게 됐지. 여기서 안 태어나고 다른 곳에서 온 친구들도 있어. 걔네들이 말해주는 바깥세상은 좀 무섭기도 하지만 적어도 따분한 이곳보다는 재밌을 거 같아.
내가 사는 곳은 되게 안락해. 그냥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늘 똑같은 삶의 반복이야.
겨울인지, 여름 인지도 모를 만큼 외부랑 단절되어 있기도 하지.
사실 계절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창 밖을 내다보거나, 사람들의 옷차림을 바라보는 방법뿐이야.
얼굴도 잘 안 보일 만큼 꽁꽁 싸매고 들어오면 겨울인 거고, 맨몸이 많이 드러나면 여름인 거겠지.
근데 사람들은 그 쓰고 맛없는 까만 물을 마시러 오는 걸까.
한 번은 우리 집의 집사가 끓이고 있던 검은 물을 몰래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
입맛도 버리고, 머리도 욱신거리어서 잠도 못 자겠더라.
저렇게 맛없는 물을 좋아할리는 없고, 분명 귀여운 우리들을 구경 오는 게 분명해.
사람들이 자주 들락날락 거리니까, 먼지가 많이 쌓여. 여긴 가정부 같은 사람이 없어. 우리가 청소해야 돼.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우리가 청소해야지 뭐.
여기 사람들은 자기 사는 곳 아니라고 막 쓰고 나가는데, 좀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야. 돈도 안 받고 열심히 청소하는 내 모습이지.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생겼다.
사람들은 우리 뒷모습이 제일 귀엽대. 어때, 포동포동한 게 영락없는 귀여운 라쿤이지?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 분명 내일이면 사람들이 와서 귀찮게 할게 분명하거든.
일찍 일찍 자 둬야 내일 덜 피곤해. 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물론 자고 있을게 뻔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