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이 아니라) 갤 가돗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스티브(크리스 파인)가 오늘을 구하고 갤 가돗이 <다크 나이트> 이후 망해가던 DC를 구하고 덤으로 세상까지 구했지만, 영화의 재미까지 구하지는 못했다. 왕년에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원더우먼 린다 카터 언니까지 깜짝 구원 등판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주술의 힘을 빌려 느작없이 부활한 스티브의 존재감은 1편만큼 단단하지 못해서 다이애나와의 투 톱 구축과 스토리 멱살 캐리에 실패한 후 '남자 바비 인형'이 되었고, 바바라(크리스틴 위그)는 '캣우먼'의 짝퉁 같아서 멋진 빌런이 되기엔 30% 정도 부족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매력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 그리고 이번 편 시그니처로 내세워서 기대를 하게 만들었던 1984년이란 시대적 배경의 의미는 대체 어디로? 펑크 볼룸 펌과 울긋불긋 에어로빅복 말고는 1984년이라는 시대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
영화를 보면서, 능력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고(전지전능이 미운 네 살 아이에게 주어졌다 가정해 보자... 덜덜), 모두가 바라는 소망(이라 쓰고 욕망)이 이루어지는 게 늘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신이 합격을 열망하는 수험생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상상해 보자. 모두가 합격하는 시험이란 모순과 대혼란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게 불변의 세상 이치)과,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거나, 세상을 속여도 절대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인생의 교훈 비스름한 것을 제법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극장에 가면서 바라는 건 정작 실전에선 써먹을 데도 없는 어마무시한 인생 교훈이 아니라 극장의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팝콘 한 통을 먹는 동안 얻을 수 있는 기쁨 정도일 때도 있다. 요즘 같은 시국엔 더더욱 더. 그렇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니까.
<원더 우먼 1984>는 우리 부부의 셀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한 달에 한 번, 공짜 조조 영화 티켓 덕분에 코로나가 판을 친 올해도 12편의 조조 영화를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조조 시간 상영관엔 관객이 대여섯 명 앉아 있는 상황이라 따뜻한 난방은 기대도 안 했지만(겨울엔 늘 추웠다, 우리 동네 CGV -_-) 손이 시려 죽을 만큼 찬물만 나오는 화장실 세면기 수도는 좀 너무했다 싶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환기를 위해서) 비상구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덕분에 상영 시간 내내 오른쪽 시야 끝에 UFO나 반딧불이가 떠 있는 것 같은 환시에 시달리며 영화를 보았다.
혹시 또 있을지도 모를 쿠키 영상을 기다리며(아쉽게도 쿠키는 한 편) 끝도 없이 올라가는 엔딩 타이틀 속 스태프들의 이름을 눈으로 좇는 동안, 다시는 영화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따위로 부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영화는 한 개인의 예술 창작물이 아니라 무수한 스태프들의 뼈와 살을 갈아 넣은 공동 작업의 문화 상품이란 사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원더우먼1984 #1984는어디로 #갤가돗짱 #갤가돗의갤가돗에의한갤가돗을위한영화 #린다카터포에버 #코로나시대의극장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