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디즈니 했네
1. 디즈니가 (오랜만에) 디즈니 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픽사에 밀려 잊히던 애니 명가 디즈니의 '라떼는' 자존심과 영광을 멱살 캐리.
2. 마지막 드래곤 시수 목소리 연기는 요즘 할리우드 대세 아콰피나. 어떨지 궁금했는데, 역시 할리우드 배우들의 애니메이션 더빙 연기 실력은 한국 배우들보다 몇 수 위. 전문 성우들 못지않은 실력파들이 많다. 시수 캐릭터 얼굴 표정이 실제 배우 아콰피나를 연상시켜서 목소리 듣는 내내 싱크로율 & 몰입도 2만 %. 반면 <이겨라 승리호> '업동이' 유해진 씨 더빙 연기는 캐릭터에 붙는 목소리와 어투가 아니라 안습. -_- 안드로이드 캐릭터에 개성적인 인토네이션을 가진 유해진 씨 목소리를 얹을 생각을 한 바보는 대체 누굴까? 캐릭터 따로 목소리 따로로 2시간 내내 겉도는 통에 시청각 대혼돈으로 멀미 날 지경이었;
3. 여성 무사 '라야'와 팔푼이 드래곤 '시수'도 매력적이었지만 최고의 매력덩어리들은 좀도둑 아기 '로이'와 '엉기(메기와 원숭이를 합친 동물)' 삼총사(디안, 판, 우카). 극 중반 등장하자마자 초반에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시선을 독점했던 '툭툭'(라야의 친구이자 반려동물. 공벌레 + 아르마딜로 + 퍼그를 뒤섞은 생명체)을 밀어내고 신 스틸러로 급부상. 이후 쿠만드라 왕국을 재건하려는 어벤져스급 캐릭터 유닛에서 귀여움과 웃음을 담당하며 극을 이끎. 등장 때마다 미친 존재감 뽐내며 스핀오프 및 속편 출연을 기대케 함. 마누라는 꼬꼬마 도둑 소녀 '로이'의 귀여움에 매료돼서 '귀여워!' 감탄사를 남발. 로이와 엉기 아이들 사총사가 <슈퍼배드>의 보조 캐릭터에서 일약 새 스핀오프로 독립한 시리즈물의 주연을 꿰찬 '미니언즈'나 <마다가스카>의 펭귄 4인조와 같은 급이 될 거라는 데 내 손모가지와 전 재산을 건...
4. 돈 홀 감독의 연출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전작 <모아나>의 어정쩡한 실패(중심 캐릭터 '마우이'의 극 중 존재감과 역할 포지션이 꽝이어서 전체 균형을 말아 먹음)를 딛고 진일보한 느낌. 같은 디즈니의 실사 영화 여전사 '뮬란'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듯. 친구이자 숙적인 여전사 '나마리'(송곳니 부족의 족장 딸)가 반대편에서 갈등 구조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무엇보다 그동안 뻔했던 남녀 짝짓기 클리셰에서 벗어났다는 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가장 멋진 성취가 아닐까 싶다. 라야가 도움을 청하러 뛰어든 배에서 선장을 찾을 때 역시 '디즈니는 제 버릇 개 못 주는군' 하며 한심해 했는데 요리하던 소년 '분'이 그 배의 선장이었다는 게 유쾌한 반전.
5. 갈등과 반목의 시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진보 대 보수의 갈등으로 두 개로 쪼개진 미국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던지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훌륭하다. 인간의 이기심과 편 가르기가 모든 갈등의 원인이고,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으로는 절대 갈등을 끝내고 화합을 이룰 수 없다. 세계를 통합하는 진정한 무기는 용의 마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믿음'이다. 능력이 모자라거나(드래곤 시수의 경우) 잠시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도(송곳니 부족의 족장 비라나와 그녀의 딸 나마리의 경우. 속임과 배신의 이유는 타자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때문) 상대를 믿어주는 것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만화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 공상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갈등과 반목이 팽배한 당대 현실에서(현실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믿음과 사랑뿐.
6. 가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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