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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 치는 snoopy Feb 02. 2023

나의 해방일지 - 이야기를 추앙해



우리들 대개는 ‘행복해지는 게 무서워 도망치는 구 씨 같은 개새끼’다. ‘우빈’이라 불리길 고대하며 살아가는 ‘삼식이’ 같은 놈들이다. 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자기 영혼이 제일 잘 안다. 행복이 고정된 입자(粒子)가 아니라 끝없이 요동치며 움직이는 진자(振子)라는 것을. 


어느 변두리 역 근처에서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구 씨(손석구)를 만났다. 스스로 만든 덫 안에서 들개에게 팔을 물어 뜯기고 마음을 물어 뜯기면서 숨만 붙어 살아가는 변두리 청춘들 각자의 이야기가, 연마된 몇 마디 대사에 농축돼 시퍼런 칼날처럼 마음을 깊숙이  찔러 오며 빙긋 웃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의 이야기’이다. 변두리를 채우고 사는 사람들은 표정이 없고, 형체가 없고, 중심이 없이, 여기서 저기로 흘러 다닌다. 어쩔 수 없이 치부를 드러내고 서로를 죽일 듯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 인간은 흘러 다니는 섬이다. 관계 맺기에 서툰, 그래서 괴로운, 욕망을 양 볼따구니 한가득 머금고 갈망하고 갈구하다 지쳐서, 인간임을 지긋지긋해 하면서 부정과 긍정 사이를 요동치는 덜 떨어진 존재.  


삶의 순간들은 사는 게 아니다. 살아내거나 견뎌내는 것. 견딘다는 것은 봉지를 까다가 싱크대 밑바닥 구석에 떨어진 생라면 부스러기를 허리 굽혀 주워 먹는 것. 우리가 견디는 사이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갈 곳 잃은 말을 그러모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혼잣말이 중심 없는 공허를 가득 메운다. 그 공허와 무기력을 ‘뚫고 나가고 싶’은 사람들의 무심한 듯 처연한 자기 연민의 기록이 <나의 해방일지>다. 칼날처럼 꽂히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희미해지지만, 비어있는 자신을 응시해야 하는 뿌리 깊은 연민은 차마 뿌리칠 수 없다. 


어디에 갇혔는지, 무엇에 갇혔는지,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인 사람들. 아무런 가능성의 틈조차 보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한계상황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기를 추슬러 지키려 몸부림 치는 사람들. 어느 날 맞닥뜨린 사고처럼, 자기 연민을 벗어던지고 ‘추앙’ ‘해방’을 선언하는 사람들. 갈망하는 것을 말로 하면 진짜 같아 보이지만 진짜는 아니다. ‘해방’이란 말이 진짜 해방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관계 맺고) 살아야 할 존재로 태어났다. 개 같은 숙명.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해 세상에 대한 몸부림 끝에 대면하는 것은 결국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이다. 


<나의 해방일지>에는 어설픈 판타지가 없어서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떠밀려서 산다. 여전히 어딘가에 갇혀서 발버둥 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알게 된다. <나의 해방일지>는 거기서 멈춘다. 그 정도로도 됐다. 단맛을 주는 것도 아니고 쓴맛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단맛이나 쓴맛 모두 극적인 장치이고 허구이니까. ‘나를 아는 것’이 ‘해방의 다’라는 깨달음.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것.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결국 견디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삶은 스스로를 ‘건사하며’(14화 제호의 경우) 살아야 하는 것. ‘추앙’은 ‘혼자 다정해’(11화 미정의 경우)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 ‘해방’은 날마다 매 순간 치열하고 끊임없이 쟁취해야 한다는 것. 뚫고 지나온 후에야 그곳에 벽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


이야기는 죽어있던 것(변두리 청춘들)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답을 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빛을 비추고 생각을 하게 하고 다시 시작할 이유를 선물한다. 무엇보다 망각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을 구원해 낸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이야기를 추앙한다.




+


<나의 해방일지>는 13화를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변두리 인생, 그곳의 중심이었던 혜숙(이경성)의 죽음. 그 이후의 세계는 낯설고 어둡고 건조하지만,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진짜 나’가 조금씩 발현된다. 


염미정(김지원)은 총 네 개의 우주를 산다. 구 씨가 오기 전의 세상, 구 씨와 함께 했던 세상, 구 씨가 사라진 세상, 엄마가 사라진 세상.   



#나의해방일지 #변두리청춘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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