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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 치는 snoopy Feb 22. 2023

We always solo,but never solo


마누라가 오십 번째 생일을 맞았다. 글로 써놓고도 믿기지 않고 직접 얼굴을 봐도 도무지 믿을  없다. 나에겐 여전히 서른 언저리의 처음 만났던 그때  모습 그대로다. 가끔 징글징글하게   듣는 여섯  사내아이 같지만, 너무 귀여워서 때론 화를 버럭 내다가도  터져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 인간이 돈이 없어 마누라 생일 선물을  샀다. 선물 대신 김밥을 만들어 먹였다. 며칠 전부터 김밥이 먹고 싶었는데 자기 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만들었냐면서 해맑게 웃는 마누라 얼굴을 보니 슬쩍, 가슴이 미어진다.


웹서핑을 하다가 홍현희 부모님 짤을 본 적 있다. 홍현희 & 제이슨 양가 부모 첫 상견례 날, 식사 자리 내내 말 한 마디 없던 홍현희 아버지가 상견례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사위 될 제이슨에게 했다는 말.


"사위! 환영하고, 고맙고, 미안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njxuw2qJ0a/?utm_source=ig_web_copy_link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던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도 빵 터졌는데, 그건 마치 우리 얘기 같아서 더 그랬다. 10여 년 전 상견례 날, 나는 일 때문에 약속 장소에 늦게 오신 장인어른을 모시러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신 장인어른은(우리는 초면이었다) 미리 사진으로 본 내 얼굴을 금세 알아보시곤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오셨다. 처음 뵙는 터라 살짝 긴장한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는데, 뚜벅뚜벅 다가온 장인어른이 악수 대신 나를 꼭 끌어안으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따뜻한 음색으로 내게 하시던 말씀. "고마워. 증말 고마워."


장인어른이 몹시 샤이 한 성격이어서 남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을 나중에 전해 들어 알았다. 그런 분이 미래 사위랍시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내를 꼭 끌어안고 고맙다는 말씀을 그렇게 전하시다니... 알토란 같은 막내딸 사랑 때문이었겠지만, 머리가 나쁘고 철딱서니 없는 나는 장언어른의 그 말씀을 "사위! 귀한 우리 딸, 잘 부탁해"가 아니라 (홍현희 아버지처럼) "사위, 고맙고 미안해"로 잘못 알아먹고, 기고만장해졌다. 내가 그녀를 '구해준 것'이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준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내가 그녀를 건사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살아 보니, 아니었다.


얼마  빨래를 널며 이케아의 문어 모양 빨래 건조대를 보다가 가슴이 물큰해진 적이 있다. 검은색 문어 건조대의 집게 스프링이 대개 망가져서 그만 버리라고 잔소리를 한참 했더랬다. 그랬더니 이놈의 마누라(?) 그나마 멀쩡한 검은색 건조대 집게를 뽑아서 빨간색 건조대의 망가진 집게 대신 교체해 놓은  아닌가. 빨래집게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 알뜰의 화신. 그날 깨달았다. 내가 마누라를 건사한  아니라 마누라가  건사해  거였구나. 손끝으로 아등바등 저렇게 열심히, 나를 건사하고 우리 결혼생활을 건사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사랑은 천칭 게임이라고들 한다. 조금  사랑하는 사람이 무조건 () 되고, 조금  사랑하는 쪽이 권력을 쥐는 비대칭 파워 게임. 우리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  알았다. 핵폭탄  착각이었고 커다란 망상이었다. 살다 보니 어느새 시나브로 역전됐다. 이제는  오래된 파워 게임에서 내가 무조건 을이다. 문어 하이브리드 빨래 건조대를  그날, 내가 빼도 박도 못하는 을이 됐다는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김밥 재료를 만들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시금치를 데쳐 조물조물 무치고, 어묵과 햄과 버섯을 달달 볶고, 달걀 고명을 얇게 부치는 내내 고마운 마음을 담았다. 모자란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요.  곁에  붙어서, 혼자였다면 무미건조했을 시간을 이렇게 풍성하게 채워줘서. 우리, 서로의 치부를 슬몃슬몃 내보이며, 각각의 재료가 모여  몸이 되는 김밥처럼, 따로  같이, 아웅다웅 넉넉하게 늙어갑시다.  없이 보냈을 마흔 번의 생일처럼, 나와 함께 마흔 번쯤  생일을 맞기로 해요. We always solo, but never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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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마누라 생일에 '남편 플렉스' 했습니다. 좌크가 준 기프트 카드로 영화도 보고 생축 케이크도 사고, 큰처남과 아주머니가 오셔서 동네 맛집 만두전골 맛있게 먹고, sungjae 님이 보내주신 스벅 기프티콘으로 즐거운 수다와 티타임을 즐기고, 쑤 양이 보내주신 고기 선물로 푸짐한 고기 파티를 누렸습니다. 고마워요, 모두. 이 고마움 잊지 않을게요. LOVE & PEACE!


#생일 #12번째함께한그녀의생일 #살아보니사랑은파워게임이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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