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상력의 놀이터
이 귀여운 할머니(=그녀의 영화)를 한 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젊은 사진작가 JR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루브르 미술관 회랑을 어린아이처럼 질주하는 투 톤 염색 & 바가지 머리의 할머니라니요! ㅎㅎ
* https://youtu.be/z6onU_fQ46U
지난여름 오타루를 여행할 때였다. 오후가 되어도 북해도의 햇빛은 누그러들 줄 몰랐다. 땀을 쏟으며 비브랜트 호텔 앞 그늘진 길을 걷고 있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보도블록 위에 영롱한 무지개가 떠 있는 게 아닌가! 길을 가던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무지갯빛에 홀렸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그 아름다운 빛의 무늬가 어디서 오는지 살폈다. 영락없이, 소풍날 눈을 반짝이며 보물찾기를 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지상의 무지개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걷는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난데없이 만난 아름다움에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다. 그 빛은 <PLEASE MOON>이란 설치미술작품의 높다란 프리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 하나가 있다. '예술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앞에서, 누군가에게 읽히지 못하고 먼지와 함께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잠자는 시 한 구절과, 사람들 기억에서 쉽게 잊히는 영화 한 편의 무기력을 숱하게 느끼며 쌓아올린 질문이었다. 질문은 메아리치며 커져만 갔다. 과연, 우리 삶의 다채로운 결을 2시간어치 필름 안에 담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동영상이 3분을 넘어가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초스피드 전광석화의 시대인 유튜브 전성시대에 영화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오래고 질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 프랑스 방방곡곡으로 모험을 떠나는 영화를 만났다. 여든여덟 살 소녀 아녜스 바르다가 서른셋 그래피티 사진작가 JR과 함께 포토 트럭을 몰고 길을 떠나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Faces Places, 2017)>의 유쾌한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발걸음은 경쾌하고 이미지는 사랑스럽다. 늙음과 젊음,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오래 묵은 지혜와 젊음의 무모함, 과거에 닿아있는 기억과 미래로 뻗어가는 상상력의 대비는 신선하고 강렬하다. 빛과 그림자처럼 양 끝단에 선 두 예술가가 서로의 공집합을 찾아가며 협업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폐광촌, 염소 농장, 염산 공장, 시골마을, 컨테이너 하역장 등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이 예술 작품의 오브제가 되고,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오랜 시간을 견딘 빈 벽들은 열려 있는 갤러리가 된다.
바르다와 JR의 카메라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삶의 순간을 프레임 안에 붙들어 영원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림을 그리는 우편집배원, SNS 스타가 된 카페 여급, 폐광촌을 지키는 늙은 아낙, 항만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 찍어 거대한 크기로 인화해 벽화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일상을 축제로 바꾼다. 그네들은 사진과 벽화 작업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만난다. 객관적으로 마주한 자신의 모습은 낯설지만 아름답다. 신화적 이미지로 구현된 거대한 벽화는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숨이 죽었던 공간 역시 새 이미지를 만나면서 새롭게 탄생한다. 오타루의 햇살이 설치미술 작업을 통해 무지개로 피어나듯, 죽어 있던 공간이 예술이란 프리즘을 통과하며 새로운 의미를 얻어 복원된다. 그것은 '얼굴들'과 '장소들' 모두에 마법 같은 일이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바르다의 호기심과 성찰은 1980년작 <벽, 벽들 (Mural, Murals)>에서 시작됐다. 'L.A.의 벽화들을 누가 그렸고 누가 감상할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인간만이 거짓말을 하고 가짜를 만든다. 때로 그 가짜(개연성 있는 허구)가 진짜(객관적 사실)보다 더 진실을 잘 드러내 주기도 한다.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통찰'이라는 바르다의 프리즘을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벽화(사실)를 영화(예술)로 재구성한다. 40년 시간을 통과한 감독의 시선은 이번에는 프랑스 구석구석을 떠돈다. 처음에는 예술 작업과 그 과정이 주인공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여염집 갑남을녀의 이야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바르다의 관점에 살이 붙는다. 바르다는 자유로운 카메라에 '얼굴'과 '장소'를 담으며, 새로운 것만을 욕망하면서 기억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항만 여성 노동자들을 형상화한 컨테이너 작업은 그 질문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그녀들은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벽화 속에서 거대한 마천루처럼 우뚝 서있다. 바르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자(벽화 그림)의 심장 속에 들어가 앉으라고 주문한다. 일련의 예술적 형상화를 거쳐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객체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로 거듭난다. 그녀들은 예술 작업의 프리즘을 통해 잊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몹시 행복해한다.
JR은 바르다의 눈과 발을 찍어 커다란 탱크로리에 붙인다. 왜 발가락 사진을 화물칸에 붙였냐는 공장 노동자의 질문에 바르다는 이렇게 답한다. "상상력을 위한 거죠. JR과 저는 서로에게 상상할 권리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영역에서 우리가 상상해도 되는지 묻죠. 여러분들이 저희 생각과 장난을 공유하면서 다들 즐거워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오타루에서 만난 빛의 무지개는 한순간 우리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상상력은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는 인간의 보물이다. 벽화 작업의 효용을 설명하는 바르다의 답변이 '영화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충분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예술)를 통해 즐거움, 호기심, 상상력의 기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영화는 충분히 제 할 일을 다한 게 아닐까?
노르망디의 밀물에 씻겨 사라진 사진 벽화처럼, 언젠가 사진도 사라지고 우리도 사라지겠지만 바르다의 바람대로 영화는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을지 모른다. 탱크로리에 달라붙은 채 바르다의 육체가 가보지 못한 많은 곳을 여행하게 될 그녀의 눈과 발 사진처럼 말이다.
by 타자 치는 스누피
#바르다가사랑한얼굴들 #부엉이극장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