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디이 Dec 02. 2023

면전에, 미국 연방 공무원이 나에게 한 잊지 못할 말

미국 시골 생활 절망편 (3)

    처음으로 미국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제대로 펑펑 울었던 그날의 기록. 잊히진 않았지만, 쓰고 싶지도 않았던 그날의 감정과 상황을 조금이나마 남겨본다. 미국에 살다 보면, 마치 공기와 같이 인종차별적 시선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NBC 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60%의 미국인이 인종차별이 주요한 사회 이슈라고 답했다. 최근 하버드대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절반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은 인종차별적 모욕을 경험했으며, 아시안계 미국인의 35%가 인종적으로 부정적이고 불쾌한 언사를 경험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통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생활 밀접형 인종차별은 나를 무력화시켰다.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만 어떤 주홍 글씨가 붙어있는 듯한 기분


    절대적인 수치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왜 <빅터 크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ing for meaning)>에서 저자가 나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적기 위해서 많은 고민과 용기를 내었는지 이해가 간다. 분노하지만, 수용소 안의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종차별자를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부에서부터 느끼고 순식간에 움츠러들게 되는 본능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들이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미 특정 인종 혐오나 인종차별에 대한 자극적인 상황들은 뉴스나 유튜브에 많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마주할 수 있는 일상 생활 속 상황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인종차별자 (Racist)"라는 용어 강조하고 싶은 이유는 확실하다.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 아니다. 어떤 과정에서든 “목적”을 가지고 표현하는 어떤 인종차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너무나도 흔한 사회악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의자"라는 이론적인 거창함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인종차별자들은 그냥 피부색 (Race)과 문화 (Ethnicity)가 다른 이들의 인권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나를 울렸던 최초의 인종차별은 내가 공부하던 미국 시골 동네에 있던 우체국이었다. 그리고 다채로운 인종차별을 경험했어도 그 뒤로 운 적은 없다.


생활 속에서 대놓고, 혹은 친절한 인종차별자들의 괴롭힘 (Harrasement)


Honey, this is how you live in the US. You need to deal with it.
얘야, 미국에서 살려면 이런 건 (차별은) 그냥 네가 견뎌야 돼 (당연한 거니까 네가 참아)
- 미국 시골 동네 우체국의 직원이었던 인종차별자 백인


    매년 봄쯤에 있는 텍스 신고를 위해서 동네 우체국인 USPS (United States Post Services)에 간 적이 있었다. 이 날 그 우체국 직원들의 행동과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 앞 뒤로는 백인 학생들이 서 있었다. 앞에는 두 명의 직원, 어떤 백인 할머니와 할머니에 가까운 백인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마감이 며칠 안 남은 상황에서 텍스 보고서를 우편으로 부쳐야 했으므로, 나이 많은 직원 분에게 예상되는 택배 기간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빙의라도 된 것처럼, 보험 약관을 읊듯이 배달은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며 자신에겐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내용의 말을 줄줄줄 읊기 시작했다. 나는 벙쪘다. '이 사람 왜 이러지?'


하지만, 나의 질문과는 달리 그 백인 할머니 직원은 내가 어떻게 물어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직원이 하는 말은 내 질문과도 상관없었고, 내 질문에 대한 답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가 하는 말은 이미 메일 봉투 같은 것에도 쓰여있어서 나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답답함을 넘어서서 당혹스럽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그 직원은 옆의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Are you filming this scene? I would like you to be my witness when I get into trouble or something related to this." 해석하자면, "너 지금 이 장면 찍고 있지? 내가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법원에 가면 네가 내 편에서 증인 해줘야 돼~ (내가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다고 했으니까, 난 얘 우편이 늦게 도착해도 책임질 일 없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법원 상황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질문은 "Do you know the approximate delivery date if I use the express mail service?"와 같이 일반적으로 익스프레스 메일이 얼마 정도 걸리냐는 아주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 직원에게 내가 메일을 빨리 보내야 하니 개런티 (Guarantee)할 수 있냐느니 혹은 무조건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해야 된다는 책임 전가성 언급을 한 적도 없었다. 나는 이미 미국 공무원들에게 어떠한 융통성도 바랄 수 없으며 (어떤 친절한 분들의 경우 예외는 있다),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우치고 있었다. 미국 메일 시스템이 서비스에 따라 가격이 매우 달랐다. 나는 돈을 아껴야 하는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단지 익스프레스 (Express)와 퍼스트 프라이어티 (First priority) 사이에 얼마나 배송 기간이 차이 나는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무력감이 어마어마했다.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체국 직원으로서 당연히 대답해야 할 말이 아닌, 갑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고객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웃는 모습이라니. 나는 당혹스러웠으나 우편을 부쳐야 했다. 그 당시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무시하고 놀려대며 우습게 대하는 사람은 비언어적 행동 (말 외의 표정, 행동, 제스처 등)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굳은 얼굴로 그 직원 앞에서 벗어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나아 보이는 옆의 직원 창구로 가서 그냥 제일 빠른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나의 원래 궁금증인 익스프레스가 얼마나 걸리는지 듣지도 못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두 번째 직원은 그냥 웃기만 했었어서 아주 조금 심리적으로 안전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지불하고 나서는 순간 여기서 한방 더 먹었다. 두 번째 직원은 나에게 혀를 차는 듯한 느낌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미국에 살 때 네가 겪고 감당해야 할 일이고, 어쩔 수 없다”고 웃었다. 서류를 부치러 갔다가, 인종차별자 듀오로 인한 혼돈의 도가니탕을 경험한 후 우체국을 나섰다.


구글 리뷰를 찾아보니 나 말고도 이미 인종차별 피해자 (동양인 이름으로 보이는)들이 많았다. 나쁜 리뷰를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쓴다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를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차 문을 열자마자,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그 친구도 역시 유색인종이었지만 미국 시민권자였으며, 사고방식이나 매너부터 완전히 미국인스러운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인종 차별 이야기를 매우 불편해한다. 미국인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은 욕에 가깝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나의 경험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한 번에 몰려왔었나 보다. 울음을 그치고,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친구는 분노하며 "F*cking WHITE TOWN!!! (백인 타운 X까라)"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평소 욕 자체를 하지 않고 매우 우아하게 말하는 완벽한 미국인 억양의 친구인데, 우느라 바쁜 나 대신 화를 내주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 안에서 그 친구는 본인이 겪었던 다운 타운에서의 인종차별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부모님의 철저한 교육 때문에 억양이 전혀 없는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했다. 그런데도 본인의 "백인이 아닌" 외모 때문에 동네 마켓에 가면 자기를 무시하고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 역시 평소에도 주로 백인들만 대상으로 해오던 작은 시골 마을의 가게들이라, 인종차별에 대한 당당함과 그들의 무지함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백인 외 다른 인종을 대하는 태도가 불쾌한 적이 많았다. 그전까지는 불쾌함은 느꼈지만 그게 딱 인종차별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이 "인종차별"때문이다라는 경험적, 일화적, 사전적 정의가 없었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말로 따지며 인종차별자 직원들과 한 판했을 것이다. "Shame on you (부끄러울 줄 알아라)"와 "This is a joke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구글 리뷰에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 조목조목 분석하고 따지는 논문을 써놨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기분은 나빠도 인종차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조차 못하는 상태였다. 미국에서 N 년을 산 이제는 이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이 수없이 많은 상황들을 겪으며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듬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언어가 늘었으며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것을 나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경험자의 인권을 무시당하는 인종차별적 상황이 좋은 경험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차별 Top 5에 드는 경험은 이랬다. 인종차별을 한 첫 번째 직원도 미웠지만, 옆에서 달래주는 척 가시 돋친 이야기를 태연스레 하던 아줌마의 말이 오히려 날 울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말은 그냥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 할머니 옆에 있던 다른 창구로 온 건데, 그냥 똑같은 사람이었던 게 어이없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라는 내 기대감과 잠깐의 안도감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나는 울음을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기 때문이다. 지옥 옆의 지옥이었달까. 그리고 앞으로도 내 업무를 어쩔 수 없이 이런 인간들에게 처리해야 된다는 사실이 싫었다.


시골에서의 인종차별이 유난히 내 멘털에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그 동네에서는 그 우체국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어떤 장소나 직원이 맘에 안 들면 다른 곳을 가면 되고 그곳을 다시는 방문 안 해도 되고 정말 심각했다면,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구글 리뷰를 남겨도 된다. 그런데, 시골에선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그곳뿐이다. 피해자는 나인데, 아쉬운 사람도 내가 된다. 차가 없었던 내가 근처 우체국을 찾아서 30분 이상을 차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경험은 내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미국 시골 생활 동안, 그리고 대도시인 뉴욕으로 옮겨 온 뒤에도 수많은 인종차별과 마이크로어그레션을 경험해 왔다. 그동안 내가 겪은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너무나도 알리고 싶어서 한국식 "대나무 숲"과 같은 익명 게시판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주변인들에게는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거나 항상 불평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는 공감되지 않을 이야기들이었다.

나에게 어떤 상해나 법적 위험을 끼치지 않는 이상, 인종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를 처벌할 수도 교육할 수도 없다. 나의 분노로 인종차별주의자를 바꿀 수 없다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맞서 싸운 적도 있다). 미국 생활에서 마주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인종차별에 나는 노출될 뿐이다. 이 무력함은 종종 기척도 없이 생활 속에서 찾아온다.


막상 글을 쓰게 된 이후에는 쓸데없이 자극적이기만 할까 봐 쓰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인종차별로 인해 함축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미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무지하거나" 혹은 "교육받았어도 다른 인종의 인권과 감정은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종이 다르면 동등하게 대할 생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칠 다른 이들을 위한 내 나름대로의 노력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과 감정 속에서 힘들어할 누군가를 위해서이다. 나의 경험이 미국 생활에서 수도 없이 마주할 크고 작은 인종 차별에 대한 예방 차원의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인종차별자를 향한 당신의 분노는 옳다.




무조건 당신만 모르는 미국의 문화 노트


인종 프로파일링 (Racial profiling)


    그렇다면 도시에서의 인종차별은 어떨까? 뉴욕은 워낙에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이라고 무조건 인종차별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도시에서 많이 보이는 레이셜 프로파일링 (인종 프로파일링)은 인종이나 종교, 문화적 (Ethnicity) 특성에 기반하여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대우하기 때문에 더욱 교묘하다. 백인들 테이블만 더 체크를 한다거나, 다른 인종의 테이블은 잘 치워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상황이라 기분 탓인가 싶게 만든다. 조금 일반화를 하자면, 주로 백인이나 아프리칸 아메리칸 계열의 레스토랑 서버들이 백인과 유색인종을 다르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팁에 후한 백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거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인종을 대하기 싫어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뉴욕에서는 서비스 직종에서 흑인 스텝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동양인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이 조용하고 순하고 의견 표출을 잘하지 않는다는 (less opinionate) 인종적 선입견 때문이다. 본인의 선입견에 따라서 외모를 보고 인종적 특성에 따라 상대가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고, 상대의 인종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역시 인종차별이다. 


도시에서의 학교와 업무 환경에서는 마이크로어그레션 (Micro-aggression: 요즘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매우 미세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워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기도 어렵지만 사실은 차별인 상황)이나 1:1 혹은 소수 그룹 안에서의 인종 차별주의자적인 발언이나 분위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기본 상식이 있는 이라면, 학교나 직장에서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드물다. 적어도 티를 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마이크로어그레션 형식의 아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형태의 인종차별이 많다. 규모가 큰 기관일수록, 일단 매년 온라인 교육도 하고 문제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공식적으로는 미국 헌법에 따라서 어떤 형식의 차별이든 금지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겪은 미국 시골 우체국에서와 같이 업무적이거나 공적인 상황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참고 문헌

https://www.nbcnews.com/politics/politics-news/poll-64-percent-americans-say-racism-remains-major-problem-n877536

https://www.hsph.harvard.edu/magazine/magazine_article/discrimination-in-americ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