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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드김 May 01. 2019

실내악이 참 좋아요

    나는 대화를 하고 있지 않거나 강의 등을 듣고 있는 중이 아니라면, 항상 음악을 듣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상황, 예컨대 운동을 하고 있다면, 미친듯이 신나는 팝, 밴드음악이나 아이돌 노래들. (근래에BTS와 엔플라잉에 입덕했다. 10대, 20대때는 관심 1도 없었던 아이돌에 이제와서 입덕이라니..훗 ) 


    하지만 머리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예를 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논문을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속터지고 한숨만 푹푹 나오는 상황, 혹은  에러창만 계속 나오는 코드를 어떻게든 에러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 눈 돌아가는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언제나 ‘옛날’ 음악, 즉 흔히들 ‘클래식’이라 칭하는 음악이다.  


    클래식에는 아주 다양한 분야가 있다.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노래하는 오페라도 있고,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들도 있고, 소규모의 악기들로 연주되는 곡들도 있다 (아.. 여기까지가 나의 중학교 음악수업에서 얻은 지식의 끝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클래식 편애가 굉장히 심하다. 오페라.. 룸메이트 덕분이라면 덕분일까? 오페라를 좋아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오페라를 보러 몇번 갔었는데, 힘들었다. 아주 가끔 익숙한 멜로디가 나올 때 빼고는, 내 뇌에 ‘부팅중…’이라는 메세지만 계속 로딩되는 상황이었다고 해야할까?  덕분에 누가 먼저 가자고 제안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해서 오페라를 보러 간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 곡들은..? 협연자들이 함께하는 콘체르토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해가 안가지만, 오케스트라만이 연주하는 곡들에는 집중이 잘 안된다. (그래도 오페라 처럼 ‘부팅중…’이라는 메세지가 뜨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 만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진 연주회에 가면, 내 눈과 귀는 언제나 내 최애 악기인 첼로만을 향하고 있다.


    서두가 길었는데, 그래서 나는  100에 98로 실내악을 듣곤 한다. (나머지 2는 콘체르토.) 이런 나의 취향은 조용함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지독하게 많으면서 소음으로 시끄러운 공간, 예를 들면 쇼핑몰과 같은 곳을 가기 힘들어한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들과 소음이 쉽게 예상되는 곳이라면,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절대 가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곳에서 나는 항상 숨막힘과 구토를 할 것 같은 순간을 경험했었다.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을 때면, 소리가 너무 많아서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랄까? 과도하게 압도당함이 거북스러워서, 음악이 끝나면 오히려 안심을 할 때가 많다. ‘이제 드디어 해방이야~!’ 이런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실내악, 특히 악기가 8대를 넘어가지 않는 곡은 다르다. 나를 기분좋게 압도한다. 과하지 않게. 특히 조금은 작은 홀에서 악기 몇대의 소리가 제각기 멜로디를 또는 반주를 연주하며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음악이 가득 찰 때면, 나도 모르게 전율을 느끼곤 한다. 아주 기분 좋은 전율. 악기 한대 한대가 함께 음악을 만들며 같이 웃기도 하고, 때로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음악으로 끝나는 순간들. 이것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실내악이라는 사랑스러운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내가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거의 십여년 전에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실내악에 ‘입덕’했다. 당시 나는 알바를 하며 번 돈으로 첼로를 배우고 있었다. 덕분에 아주 가끔 악기 수리할 일로 서초동에 가곤 했었다.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악기 수리하러 첼로를 매고서 서초동 악기점거리를 올라가다가 공연 포스터를 하나 보았다. 스트링콰르텟이 몇 주 후에 예당에서 연주를 한다는 포스터.  


    스트링콰르텟이 뭐지?  ‘스트링’이니 현악기 연주팀인 것 같고, ‘콰르텟’이니 악기가 4대라는 것인가? (정말 그때 당시에는 아는게 없었다.) 그냥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티켓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이 전까지 나는 피아노 연주회나 첼로 연주회만 가끔 가곤 했었는데,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그 연주회. 바이올린 두대, 비올라와 첼로 각각 한대, 총 4명의 젊은이들이 여러 스트링콰르텟 곡들을 연주했다. 충격적으로 좋았다. 정말 좋았다. 다른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당시 그 스트링콰르텟 팀은 그리 유명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콰르텟중 하나가 되었다. 정말 너무나도 연주를 잘하는 팀. 이 팀의 한국 연주회는 자주 찾아갔었는데, 그들의 연주 덕분에 갈수록 내 귀는 고 퀄리티의 연주만 찾게 되어서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 연주회 이후로 나는 이런 스트링콰르텟 혹은 트리오 연주회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사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다라고 얘기하는 숫자가 많다. (내 지인들 대부분 (>90%) 이 클래식 비전공자이다.) 그들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클래식계의 ‘슈퍼스타(99.999%는 솔로연주자들)’의 연주회는 그나마 조금은 관심있어하는 것 같지만, 그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3세계에 있는 연주자 혹은 연주팀의 공연은 ‘공짜표’가 생겨도 가지 않는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나처럼 ‘입덕 포인트’를 갖지 못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너무나 ‘익숙’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레퍼토리만을 접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굳이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아도 99.9%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며 한번쯤은 들어봤을 곡들, 예를 들어 캐논 (아.. 캐논의 ‘캐’만 들어도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 백조, 아베마리아, 혹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끔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연주회가 공연된다는 홍보팜플랫을 보게 된다.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예상되는 곡’들로 가득 차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프로그램으로는 관객을 1차적으로는 어느 정도 모을 수 있겠지만, ‘입덕’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이 든다. 연주회에서 평소에는 못느끼는 ‘새로움’을 느껴야 다음 연주회가 기대가 되고, 더 찾게 되지 않을까? 


    익숙한 곡들 사이사이에 킬링포인트를 갖고 있는 조금은 새로운 곡들을 껴넣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캐논 후,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을 넣고, 리베르탱고 (얘도 너무 지겹다) 다음에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을 넣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종종 뉴스로 ‘클래식 슈퍼스타’들의 공연티켓이 몇분만에 매진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곤 한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BTS도 Cold Play 내한공연도 아닌, 클래식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되다니! 이 소수의 클래식 연주회를 제외한 나머지 클래식 연주회는 사실 ‘매진’시키는거 자체도 참으로 힘들다고 들었다. 특히나 실내악 연주회는 대중의 관심이 덜해서 일까? ‘매진’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몇 주 전에 학교에서 하는 실내악 연주회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는 음대로 유명해서 교수님들은 물론 학생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연주에서 실망하는 일이 거의 없다.) 

프로그램도 좀 생소하고, 연주자들도 슈퍼스타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황금시간대, 일요일 저녁8시 공연이었고, 시험기간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무료’ 공연이었다. 


    그 날 비가 와서 일까? 그리 크지도 않은 홀에 관객수는 서른명도(!) 넘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 자주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관객분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연주자도 아닌 내가 너무 민망했다. 심지어 연주자에게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바타를 만들어서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연주는 정말 좋았다. 새로운 작곡가, 내 취향저격 곡을 또 하나 알게 되어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 들은 곡을 자주 듣곤 한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그 공연을 위해 계속 공부하고 연습했을 연주자들 입장에서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자신의 노력과 어느 정도는 성과가 비례를 해야, 좁게 볼때는 연주자들의 생계부터, 크게 봤을 때는 그들의 자아 성취까지 어느 정도 보장이 될 텐데, 계속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연주자들이 같은 시간과 노력, 금전을 투자해 가면서 이런 음악을 하려 할까?

 

    이 상황이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십년 뒤, 이십년 뒤에는 실내악을 전문으로 하는 연주자들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적어지고, 더이상 공연장에 실내악 연주가 올라가지 않아서, 듣고 싶은 실내악 음악을 들으려면 CD 로밖에 못듣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실제 공연장에서 듣는것은 CD로 듣는 것보다 수천배는 더 좋은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Image is from Google)




    이런 현실이 내 전공분야와 너무나도 겹쳐져서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원 2년차가 되었을 때, 내 연구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소위 말하는 ‘연구제안서’를 ‘펀딩’을 목적으로 써야 하는 수업을 들었었다. (새하얀 워드 페이지에 내 프로젝트가 다른 프로젝트들에 비해서 얼마나 더 매력적이며 흥미로운지를 온갖 근거 논문들을 참고해가며 낯부끄럽게 채워나가는게 너무 두려워서 피하고 싶었지만, 이 수업은 졸업하려면 반드시 수강해야하는 ‘required’ 수업이었기에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작성한, 8-9페이지에 달하는 제안서를 최종적으로 제출하기 전에 내 지도교수와 다른 교수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값진 기회’를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나름대로 몇번의 수정과 탈고를 반복한 제안서를 교수들에게 보냈고 피드백을 받았다. 모든 교수가 내 제안서의 마지막에 이런 피드백을 달았다. “이 연구가 어떻게 하면 medical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지 덧붙이면 좋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암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인지 덧붙이는 것을 추천한 것이다.  


    내 연구는 기초생명과학분야 이다. 소위 말하는 돈 안되고, 직장 찾기 어려운, 직장을 찾아도 페이가 적고, 비정규직인 (특히나 여성연구자라면 임신하고 육아를 하면 취직하기 어려운. 해고 안당하면 다행인. 여전히 성차별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참 뭣같다.). 


    어떻게든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펀딩 목적의 그들의 제안서, 혹은 연구 논문의 마지막을 그들의 연구가 얼마나 ‘암 치료’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 지로 장식을 한다. (생각을 해보면 어떻게든 기초생명과학 연구는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 결국 암도 DNA 수준에서의 에러로 시작되는 것이니.. 즉 내가 보기에는 굳이 제한된 페이지안에 포함 시킬 필요 없는 redundant한 내용이다. Redundant를 참으로 싫어하는 교수님들의 연구제안서는 항상 이런 redundant한 내용으로 끝맺음을 한다. 참으로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나같은 초짜대학원생들이 쓴 제안서는 허술하고 서툴기 그지 없지만, 대학원생활 6-8년, 포닥 적어도 5년 정도를 통과하고, 운 마저 좋아서 ‘교수’자리를 따낸 분들의 제안서는 정말.. 예술이다 라고밖에 표현이 안된다. 그들의 제안서를 보면 연구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가치있고, 매력있어 보인다. 그들의 연구를 통해서 이 세상에 고치지 못할 질병, 답이 안나올 질문따위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제안서 대부분이 연구비를 따지 못한다. 오직 선택받은 소수만이 연구비를 따내고, 본인의 관심분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직 소수만이 나름 안정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연구를 할 것이고, 이런 현실을 깨달은 나를 포함한 평범한 대다수는 돈이 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분야로 떠날 것이다. 이게 계속 되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갈수록 기초분야 연구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사실 이미 많이 줄었다). 기초분야 연구자들 없이 요즘 핫한 CRISPR같은 것이 발견/개발될 수 있을까? 답은 No.


    클래식도, 기초과학도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 그저 손놓고 상황이 개선되기만을 하늘에 바라며 가만히 있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대책은 너무 뻔해서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펀딩.) 

뛰어난 연주자들은 참 많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을 어떻게든 대중이 보기에 더욱더 매력적으로 ‘광고’하고, ‘포장’할 수 있는 기획자들, 그런 기획자들과 연주자들을 서포트할 수 있는 정부와 기업체의 물질적인 관심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적기 시작한지 두시간이 지났다. 문법 오류 걱정 없이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유로움 덕분일까? (한글 만세!) 아니면 연구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잉여로운 상황 덕분일까? 아! 오랜만에 먹은 짜장라면 덕분인 것 같다. 여튼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참으로 날쌔다. 고향의 우리 엄마가 이 글을 혹시나 보신다면 “아이고 딸내미~ 네 앞가림이나 잘해~ “ 라고 하실게 눈에 선해서 웃음이 난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남 걱정이나 하면서 잉여로움을 즐길까 한다. e북도 이미 통크게 7만원어치나 구매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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