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죽어
별 다섯개 만점짜리 책.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 의사인 저자가 진료를 보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겠지 생각하고 말이다. 결론은? 내 예상이 맞았다. 진료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참 재밌고 가슴 따뜻해지게 한다.
저자는 시골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이다. 누구보다도 다이내믹한 직장생활을 하던 저자는, 이래저래 사정으로 한적한 시골에서 진료를 보며 지내고 있다. 주 고객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어르신들, 특히 ‘할매’들은 정이 너무나 넘쳐나신다. 약이 아직 떨어지지 않아서 의사양반을 볼 이유가 없는데도 굳이 계단까지 걸어 올라와주시는 정성과 함께 감을 잔뜩 갖다주기도 하시고, 따뜻한 찐옥수수를 온기가 사라질까 걱정되어 ‘달려’와 갖다주기도 하시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참 따뜻하다.
가끔 나를 박장대소하게 하는 에피소드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패셔니스타 할머니 이야기였다. 다들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내 맘에 안들어서, 혹은 질려서 안입는 캐릭터티셔츠를 어느날 보니 할머니가 입고 계시는 것을 발견한, 그런 기억들 말이다. 이 할머니는 손주가 더 이상 안신는 하얀 실내화에, 손주가 안들고 다니는 파워레인저 가방, 손주 삼선 트레이닝복, 거기에 뉴욕 양키스 스냅백 모자까지. 실제로 이 할머니를 내 눈앞에서 뵙게 된다면 셀카 한장만 같이 찍어주실 수 없겠냐고 꼭 여쭤볼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가 그리웠다. 지금은 하늘에 계셔서 만날 수 없는 우리 할머니.
친할머니는 당신께 첫손주였던 나를 유난히 예뻐해주셨다. 당시 거금을 지불해야 살 수 있었던 피아노도 사주시고, 엄마 몰래 과자랑 요거트를 챙겨주시기도 하시고. 외할머니는 당신의 막내딸인 우리 엄마의 첫 딸인 나를 너무 귀여워 해주셨다. 외할머니 뵈러 시골에 내려가면, 항상 맛있는 밥을 해주셨다. 풀반찬이 가득한 ‘건강’식단이었음에도, 할머니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어린 내 입에도 꿀맛이었다. 특히 살짝 탄내가 나는 계란찜. 너무 그립다. (외할머니댁에는 전자렌지같은 하이테크 전자 제품이 있지 않아서, 아궁이를 이용해서 모든 음식을 하셨다. 덕분에 계란찜도 살~짝 바닥이 항상 타있었다.)
내가 철이 들기전에 두 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내가 조금만 더 철이 들었었다면 내가 두 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없는 애교도 피워가며 표현했을 텐데.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애교도 없던 나는, 사랑표현을 잘 하지 못했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된다.
할머니! 언젠가 저도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그 때는 댕댕이들처럼 꼬리도 흔들며 애교 많이 피울게요! 그 곳에서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