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의 죽음이 곧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거나.
저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시간을 끝까지 붙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했다.
괜시리 이 책을 읽으면 내 자신이 감상적으로 변할 것 같기도 하고, 눈물도 쏟을 것 같은 예감에, 책을 구매만 해놓고 펼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붕어빵 에서 가장 좋아하는 꼬리부분을 아끼고 아껴놨다가 가장 나중에 먹는 것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결국 e북 파일을 열었다. 모든 책들이 그렇듯 저자의 약력이 가장 첫장에 있었다.
“ 스탠퍼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학위 취득 후, 케임브리지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 이 후, 예일 의과대학원에 진학. 다시 스탠퍼드 대학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 “
위의 한 단락은 이 책의 저자의 학력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대단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학력 자체만으로도 비현실적이다.
이 모든 학위/수련 과정을 끝내고 신경외과 의사로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할 즈음 저자는 본인이 암에 걸린 것을 알게되었다. 이건 무슨 한국판 막장드라마 주인공의 스토리 인가?
안타깝게도 이건 실제로 저자인 폴 칼라니티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 약력에는 또한 저자가 몇편의 짧은 에세이를 뉴욕타임즈와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했다고 적혀있었다. How Long Have I Got Left? 그리고 Before I Go. 바로 웹에 접속해서 이 두 편의 에세이를 읽었다. (http://paulkalanithi.com/)
I can’t go on. I’ll go on. 이 두 문장이 폐암 (metastatic lung cancer)을 진단받은 후 저자의 마음과 결심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무너져버릴 듯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삶을 끝까지 살아내겠다고.
비흡연자이며 30대의 젊디 젊은 자신이 정말 예상치 못하게도 폐암을 진단 받는다면.
더군다나 이 폐암이 뇌로 전이가 되어서 앞으로 자신이 어떤 식으로 상태가 악화 될지를 다 알고 있다면.
그가 그동안 수술방에서 무수히 접했던 그 신경외과 환자들과 같은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이미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 즈음일 것이라는 것을 담당의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면.
연구를 하며 수없이 봐왔을 survival curve가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면..
상상이 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렇게 두편의 그의 이야기를 읽고, 그를 떠나 보낸 후 그의 아내가 적은 글을 읽었다.
My Marriage Didn’t End When I Became a Widow.
남편을 만난 순간부터 그의 죽음 후 그녀의 삶까지 담담하게 적으려 한 그녀의 노력에도 그녀가 여전히 얼마나 슬픈지를 숨길 수는 없었다.
I can’t take your hand, but I will guide you; you will not go alone. 여기부터 내 눈물샘은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 아.. 이런 울보. 또 터졌네. ‘
이렇게 한바탕 울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일단 한번 울고 났더니 담담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는 암 진단 후,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고, 현실적으로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신경외과 의사로서 일을 계속 해나갔다.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서 자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기 위해 항암치료로 인해 끝이 갈라져 아픈 손가락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저자 뿐 아니라 저자의 아내인 루시에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들이 항암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동의하에 아이를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선택이 로맨틱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 번을 생각해도 이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아이는 폴의 남겨진 짧은 생 동안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겨진 루시는 혼자 이 아이를 키워야 하고, 이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이 자라야 할 것이다. 이게 옳은 것일까? 그들의 선택이니 내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겠지만.. )
그는 최선의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고,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다.
(칼라니티 가족 사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암을 진단받고, 암으로 죽고 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야만 하는 치명적인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남겨질 가족들과 친구들, 나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할까?
인간은 아는게 참 많고, 못하는게 없어 보인다. 과학 기술, 지식은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블랙홀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내 살아생전에 이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 못했는데.. ).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여전히 약하고, 무지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더욱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을 물어본다면 ‘죽음’일 것이라고. 왜냐면 그 이후의 것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제아무리 천재적인 석학도,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듯한 권력자도, 죽을 때까지 다 쓸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갖고 있는 부자도, 결국 다 죽는다.
지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생명체들은 전부 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다.
죽음을 막연히 떠올릴때, 나는 너무 두려워서 그저 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매 순간에 집중하며 하루를 살아 내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내 삶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내 것이라면 나의 의지대로, 내가 세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여전히 내 삶은 외부에서의 영향으로 이리저리 뒤틀리고 있다.
평소에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시는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시곤 한다. 어차피 인생은 직선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이리저리 뱅뱅 돌아돌아간다고. 매 순간 방향을 잘 잡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씀이고, 동감한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그게 참 어렵다. 여전히 일희일비 한다. ‘쿨’ 해지고 싶은데 ‘쿨’해지는게 참 어렵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삶과 죽음을 바라볼 것인지. 생각을 계속 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뭐, 이렇게 쉽게 답이 나온다면 인류가 평생 풀지 못할 숙제가 아니겠지?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살아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