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한다고? 정말?
울긋불긋 타오르는 피부, 걸음마다 맺히는 땀, 온 천지 새파랗게 핑글 도는 계절. 서늘한 밤이라고 한숨 돌리자면 다가오는 모기떼까지. 여름을 싫어할 이유는 끝도 없다. 봄이랑 가을이 있잖아, 차라리 겨울이 낫지. 그래도 여름이 제일 좋다는 친구들. 이토록 쨍한 활기는 여름에만 있다나. 거 참, 모기에 물린 발바닥을 벅벅 긁으며 생각한다. 조금 더 쨍했다간 타죽겠는데.
나는 1991년의 가장 더운 날 태어났다. 여름 한복판이 내 계절적 고향인 셈이다. 아스팔트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 이때구나 싶다. 나가야지. 친구를 만나러, 맛있는 밥을 먹으러, 태어나길 잘했다는 기억을 남기려. 한참을 걷다 보면 옷에 새하얀 소금이 묻어난다. 그래도 기를 쓰고 나간다. 여름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름에게 지기 싫어서.
푸른 잔디 위를 구르던 락 페스티벌, 산책길 중턱에서 마시던 수박주스, 하얀 구름을 가로지르던 리프트, 불쑥 떠난 여행에 마주한 파도와 모래. 기어코 여름을 이겨 먹은 날 찍은 사진들은 눈부시게 쨍하다. 아차, 기억 속 여름은 가장 즐거운 계절이 된다.
나도 여름이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좋아한다. 땀 흘리며 겪을 때 말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차가운 에어컨 바람 맞으며 바라보는 여름, 그 건강하고 활기찬 푸른빛은 오랫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건 창밖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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