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굴양 마흔일기
인생에서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철모르고 부모님 품 안에서 나만 잘 자라면 되는 유년기? 자기가 얼마나 예쁜줄도 모르고 공부만 해야 하는 청소년기? 처음 어른이 되어 빛나는 젊음을 탕진하는 청년기?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니 삶이 버거웠다.
마흔이 지나고 나서는 늘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해왔다. 물론 여전히 지금도 헤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그걸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어서 역시 지금이 제일 좋다. 이삼십대의 흑역사들 속에 어설프고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있기 때문일까. 마흔이 지나고 느껴지는 이 안정감이 참 좋다.
다만 몇 살이라도 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역시 아이를 키울 때다. 여성은 20대여도, 40대여도 임신, 출산 이후로는 몸이 완전히 변한다. 아이 낳고 산후조리를 잘해서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는 순 뻥이다.
여성으로 살아오며 내 자신이 가장 빛났다고 생각했을 때는 30대였다. 20대는 너무 어렸고, 내 몸을 잘 몰라서 서툴었다. 40대가 되고 나서는 외모 자신감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아직 가꾸면 괜찮다’는 마음과 ‘이제 외모로 살 나이는 아니지’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운동은 살기 위해, 화장은 기미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면 너무 솔직하려나.
아이는 부지런히 크고 있고, 나와 남편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외연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가장 큰 성장이 체감되는 시기. 50대에 들어선 선배들이 자녀의 독립과 부모님의 건강과 부양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곧 저런 고민들을 안고 살겠구나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완경과 갱년기, 아이를 늦게 낳았으니 아이의 사춘기도 겹칠 것이다. (우리 남편은 가출을 결심하고 있다던데…가출은 내가 해야 되지 않아?)
그래서 마흔을 열심히 살고자 한다. 체력이 전같지 않고 머리가 팽팽 돌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가 조금 있고 진상을 만나도 적당히 피하며 웃어줄 수 있는 마흔이니까. 그러다보면, 오십이 반가울지도 모른다.
어떤 나이에서도 빛날 수 있는 당신이기를
그리하여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