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볼 수 없는 날

by 네로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어린이집, 아이를 안고 있는 선생님, 그걸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


전북에서 공직자로 육아휴직 중이던 아내는 작년, 경남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문제는 임용 유예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합격을 포기하거나, 한 달에 한 번 연차가 생기는 시보 기간을 견뎌내야 했다.


아내는 줄 곧 전북이 아닌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서 공직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애당초 우리가 전북에서 생활을 시작한 건 내가 농촌진흥청에 근무했기 때문으로, 부부가 함께 지내기 위해 선택한 지역이었다. 7년 후 내가 퇴사하고 경남으로 내려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 역시 처음엔 내년을 기약하며 경험 삼아 치른 시험이었는데, 곧바로 합격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 일은 적어도 우리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내년까지 육아휴직을 쓰려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건 작년 4월. 같은 해 12월 최종 합격 발표 후, 아내의 휴대폰으로 인수인계 관련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신생아 때도 내가 돌봤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이가 울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보였다. 통증 때문에 약을 먹고, 그 약기운에 취해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 나. 그런 비루한 몸뚱이가 너무나도 미웠다. 집안일은커녕 아이가 먹을 이유식조차 제때 준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도 아팠지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더 힘들어했다.


어떤 날은 잠에서 깬 아이가 서럽게 우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결국 생후 8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매일 등원 전, '키즈노트'라는 앱에 아이의 기상 시간과 분유량, 배변 유무와 체온, 이유식 종류를 꼼꼼히 적어 올린다. 그리고 자수로 아이 이름이 새겨진 세 종류의 파우치에 이유식과 여벌 옷, 손수건을 각각 챙겨 가방에 넣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등하원은 내 몫이다. 아이는 여전히 등원할 때마다 울음을 터뜨린다. 마음이 아파 달래주거나 눈물을 닦아주면 아이가 나갈 때 더 크게 울기에, 나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바로 돌아서야 한다.


어린이집 문이 닫히고 나면,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인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에 돌아오는 길 위로 길게 따라붙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