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너의 길을 걷는중이야, 아직

by 네로

사천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말 없는 방 안, 어색한 도시의 풍경.
그 고요를 견뎌보려고


서포면의 노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셨고,
나는 그저 워커를 가져다 드리고, 말벗이 되어드리고, 청소를 했을 뿐인데,

그분들은 늘 손에 사탕을 꼭 쥐어주시며
“고맙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얼마나 손에 쥐고 계셨던건지, 조금은 녹아있는 계피맛 사탕은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그리운 맛이 났습니다.

‘누가 이런걸 사주셨을까?’
‘무슨 마음으로 들고 계셨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아내와 아이가 사천으로 내려오고 나서는
그곳에 더는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시설의 직원분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한 번은 결혼식장에서 원장님을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언제든 아이랑 함께 놀러 오세요.”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함께 가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그 아이의 손에도
작은 과자가 하나 쥐어질 수 있을까요?

내가 받았던 그 고마운 마음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말을 아끼며 곁을 지키는 일도
다 내 방식대로 해온 거라는 걸요.

부끄럽고 서툴렀던 기억도,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들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말로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함을 받았던 날들,
또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따뜻함을 건넸던 순간들,
그 모든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이야기라는 걸
조금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렸습니다.
‘네로’라는 필명으로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익숙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라이킷’을 눌러주거나
짧은 댓글을 남겨주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습니다.

‘내 말이 누군가의 하루에 닿았구나.’
그 사실이 고맙고, 또 위로가 되었습니다.


네로, 너의 길.

내가 정한 이 이름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싶었던,
그 소심하고 단단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외로움도, 감사도,
소중했던 모든 순간들을 고스란히 안고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일어섰고,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습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지나온 모든 발자국마다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스쳐간 따뜻한 흔적들이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나를 닮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어설프게나마 그 곁을 지키려 할 때,

그 마음이 상처받지 않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실 아직 그 사람을 따라 길을 더 걷고 싶습니다.

아내가 나를 부른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너의 길을 걷는 중이야,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