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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오래 머물러 익숙해진 자리에서 벗어날 용기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때 영양제를 주기도 하고 잎을 쳐내주기도 한다. 끝끝내 하나의 분 속에서 탈없이 잘 자라는 친구들은 흔치 않다. 보통의 식물은 생애주기의 언젠가 분을 갈아줘야 하고, 그 분이 맞지 않으면 또 다른 분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제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분을 찾아야 본래의 푸름을 찾고 빛 좋은 열매를 제공한다.


일을 시작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따져물어보면 끝에는 결국 돈이 있었고, 그 결과값은 '좋은 생활'이었다. 일에서도 '좋은 생활'을 탐하며 흥미있는 영역에서 돈을 벌겠다는 이유로 이 필드 안에 계속 머물렀고, 일을 해나가며 점점 취지와는 다르게 타성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내가 담겨진 마케팅이라는 필드는 특정한 목적 하에 고효율의 광고와 홍보 활동을 통해 인식을 바꿀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영역이다만, 마케팅을 배우는 시간보다 정치를 배우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건 또렷한 알람이다. 일보다는 설득이라는 미명하의 정치질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산길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닦아놓은 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자욱한 알 수 없는 길에 접어든 기분이다.


사회 초년 5년의 시간은 안개처럼 스러져가고, 이제는 일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것의 의미가 선명하다. 커리어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 위에는 내 삶이 있다. 좋은 커리어란 커리어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 철학이 서로 자연스레 스며들어 마치 나라는 브랜드와 커리어가 유사한 톤으로 물들어나가는 것이었다. 업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명성이나 큰 돈을 얻는것도 매우 기쁠 것이다. 다만 내가 66사이즈를 입는데 너무 예쁘고 독특한 44사이즈의 드레스를 어거지로 입고자 할 때의 뼈를 깎는 고통, 혹은 어찌해도 살이 찌지 않는 깡마른 체질이지만 66사이즈의 드레스를 예쁘게 입어 포토콜 앞에 서야할 때의 난감함처럼 내 능력이나 상황 속에서 과하게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면 그 과정이 개인에게 성장어린 고통을 줄지, 고통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일상을 보내게 될 지는 깊이 고민해 볼 일이었다. 


좋은 혹은 나쁜 흙이던 오래 머물러 익숙해진 화분 속, 묻은 뿌리의 흙을 털어내고 냄새도 맡아보지 않은 새 흙을 찾아가 익숙해지려면 또 어느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걸까. 내 인생은 오롯한 나의 과제이니, 부디 나약한 내가 소중한 인생의 굴곡에서 어디론가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길.  

작가의 이전글 2021.05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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