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팔당대교에서 2km쯤 달려 초계 국숫집에 도착했다. 실내조명이 어두웠다. 설마 하는 마음에 문을 밀어봤지만 밀리지 않았다. 그제야 오픈 시간 10시라는 세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는데…. 벌레가 활동하기 전에 일어나면 쓸모없구나!’
세상은 넓고 식당은 많다. 우린 맞은편 초계 국숫집으로 향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다.
닭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자전거길 지도를 펼쳤다.
“아들, 두물머리 들러 핫도그 먹고 갈까?”
“아니, 핫도그는 지난번에 먹어 봤잖아. 그동안 안 가봤던 곳에 가고 싶어.”
자전거길 경로를 쭉 훑어보니 가는 길에 양평 군립 미술관이 있었다.
“닭칼국수 나왔어요.”
보던 지도를 접고 식탁이 세팅되는 모습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닭칼국수가 식탁 위에 오르는 순간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닌데….’
지난번 앞집에서 먹었던 닭칼국수는 큼직한 닭다리가 칼국수 그릇 삼분의 이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닭다리 뜯는 재미와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닭칼국수는 그릇 안의 닭고기가 어느 부위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닭다리 뜯는 재미는 없지만, 국수는 쫄깃하고 맛있네.”
환이가 국수를 먹어 보고 한마디 했다. 환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한 젓가락 먹어 봤다. 직접 뽑은 울퉁불퉁한 면에 호박으로 색을 낸 노랑 면발이 쫄깃하니 맛있었다. 육수도 걸쭉하니 괜찮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속아 넘어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길 건너 도넛 가게에 들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넛 금방 튀겨 드릴게요.”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둘러봤다. 이 가게가 TV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사진과 연예인 사인이 보였다. 그중 축구선수 박지성 사인이 유난히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 박지성도 가족하고 자전거 여행했었나 봐! 어디까지 갔을까?”
“아가야, 뜨거우니까 잘 들어. 바로 먹으면 입천장 다 까진다. 식혀 먹어야 해!”
환이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도넛 봉지를 받아 들고 나에게 주며 피식 웃었다.
“나 참, 어이가 없네. 나 보고 아가래!”
“좋겠다. 젊어 보여서.”
“밥도 먹고, 간식도 챙겼으니 엄마, 이제 달려볼까?”
환이는 음악을 크게 틀고 신나게 페달을 굴렸다.
“아기, 잘 탄다. 힘내자! 최고!”
뒤에서 오던 라이더 무리가 우리를 지나치며 환이를 격려했다.
아침부터 날이 우중충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자전거 타는 것도 추억이라며 달리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자전거길 옆 자전거 쉼터에는 비를 피해 쉬고 있는 라이더들이 보였다. 우리도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천장이 가려진 쉼터에 멈췄다. 내일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의 말을 믿고,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우비를 살 생각으로 집에 있던 우비 하나만 챙겨 왔는데 비가 제법 내렸다. 하나 있는 우비는 내가 입고, 아이는 방수 기능이 있는 잠바를 꺼내 입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쉼터에서 도넛을 꺼냈다.
“이 집 맛집이네. 식어도 맛있어. 엄마, 이것도 먹어봐!”
환이가 도넛 한쪽을 뜯어줬다. 이건 내 것도 맛보고 싶다는 무언의 압력이다.
“엄마 것도 좀 줘볼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이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어쭈! 이젠 돌려 말할 줄도 아네!’
쉼터에서 마냥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들, 출발해 볼까?”
빗속을 달려보기로 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자전거 카페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 도착하니 그쳤다.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서 지난번 춘천을 다녀오며 찍은 인증 수첩을 보여줬다. 카페 주인은 컴퓨터에 인적 사항과 종주 기록을 입력하고 수첩에 북한강 종주 완료 스티커를 붙여줬다. 번쩍번쩍 은색 스티커가 마음에 드는지 환이는 받자마자 얼른 사진 찍으라고 재촉했다. 멋진 배경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 구도를 이리저리 잡아봤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들, 여기에 서 봐! 아니다 저기로 가 봐! 이것도 좀 그런데.”
“엄마, 뭐 해? 얼른 찍어.”
‘아는 게 병이다.’라는 속담이 딱 내 처지였다. 작년 도서관에서 사진 에세이 강의를 들었다. 글쓰기 수업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12차시 중 여섯 번이 사진 찍는 방법과 구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구도를 어설프게 알고 나니 마음에 드는 사진 찍기가 어려워졌다. 수업을 받은 후 사진 찍는 횟수도 반의반으로 줄었다. 사진작가처럼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공을 들이기는 귀찮고 대충 찍으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총체적 난국이었다.
“엄마, 뭐 해? 빨리 찍어! 다 찍었어?”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철없는 아들의 재촉하는 소리에 대충 찍고 마무리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우리는 양평 군립 미술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 보는 코스다.
“어떻게 오셨어요?”
양평 군립 미술관 앞에 자전거를 세운 우리를 보고 미술관에서 관계자가 나와 말을 걸었다.
“가는 길에 미술관이 있어서 한 번 보고 가려고요.”
“지금은 다음 전시회 준비 중이라 실내 전시가 없어요. 실외 전시장을 둘러보고 가세요.”
미술관 관계자는 실외 전시물을 간단히 소개하더니 미술관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달리는데 공원 놀이터가 보였다.
“엄마, 여기서 놀다 가자.”
놀이터에는 그동안 환이가 보지 못했던 놀이 시설들이 있었다. 환이는 원형 틀 위에 그물이 얼기설기 엮어진 놀이 시설에 누워 비가 갠 맑은 하늘을 바라보다 내게 말했다.
“엄마, 밀어줘.”
“잘 잡아. 떨어져도 난 모른다.”
“잘 밀어줘야지. 떨어지면 아동학대야.”
“내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부모 학대다.”
처음엔 틀 위에 발을 대고 살살 밀었는데, 환이의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엄마, 조금 더, 조금만 더 세게”
내가 발로 힘껏 밀어주니 환이는 바이킹보다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무도 없던 공원 놀이터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은지 둘레길 걷기 운동하던 사람들이 환이를 한 번씩 쳐다보며 웃음 짓고 걸음을 재촉했다. 엉덩이도 쉴 만큼 쉰 듯해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을로 이어진 길은 급경사 구간이었다.
“엄마, 이 음악 괜찮지? 타워디펜스 게임 음악인데 정말 신나!”
환이는 자전거를 끌고 게임 음악에 맞춰 경사 길을 힘차게 올랐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내려오니 개군레포츠공원과 이어졌다. 축구장, 야구장을 지나니 국궁장이 보였다.
“엄마, 활쏘기 하고 갈까?”
국궁장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지만, 한 번 가 보기라도 하자는 아이의 말에 우리는 국궁장을 향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활쏘기 체험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할아버지는 여기서 기다리라며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셨다가 잠시 후 다른 분과 함께 나오셨다.
“이쪽으로 오세요. 몇 학년이니?”
함께 나온 선생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국궁장이야. 어디 보자. 우리 왕자님한테는 이 활이 맞겠다. 이거 들고나가 볼까?”
선생님은 환이를 데리고 국궁장으로 나가 국궁과 양궁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국궁의 기본인 활과 화살 잡는 법을 알려줬다.
“처음이니까 10m 거리에서 시작해 보자.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쏴.”
서울랜드 양궁장에서 활을 쏴본 환이는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백발백중이다.
“대단한데. 처음엔 과녁 맞히기도 힘든데 10개가 다 맞네. 최고! 20m로 늘려볼까?”
그렇게 20m, 30m 거리를 늘리며 열정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잘 쏘는데. 백발백중이야. 가르칠 맛이 나네.”
아이가 용기를 갖고 쏠 수 있도록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고 가르치던 선생님은 쏘는 것만큼 보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국궁 고수라는 다른 할아버지와 함께 나오셨다.
“위험할 수 있으니, 뒤에서 보자.”
어머니도 잘 보세요.
“저기 앞에 과녁 보이지? 저기까지가 150m야. 화살이 활을 떠나 어떻게 날아가는지 잘 봐! 과녁에 맞으면 빨간 불이 들어올 거야.”
처음 두 번은 내 눈이 화살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언제 맞았는지도 모르는데 과녁에는 명중을 알리는 빨간 불이 반짝였다. 열 발 중 마지막 두 발이 남았을 때, 드디어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을 눈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이제 활 주우러 가자.”
아이를 데리고 과녁 앞으로 가면서,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내가 쏜 활을 정리하는 것까지가 체험의 마무리예요. 아이들 체험은 활을 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더 중요해요. 꼭 알아두세요.”
그렇게 선생님과 40분 정도 체험을 했다.
“어머니, 저는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하니까 여기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만큼 체험하다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결재는 어디서 해야 할까요?”
“그런 거 없어요. 이렇게 아이와 여행 다니며 배우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걸로 충분합니다. 건강하게 여행하고 아이 잘 키우세요.”
“잘 가르쳐 주셨죠?”
입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지금 가신 분 고려대학교 체육대학 교수님이세요. 대학생들 데리고 가끔 활 쏘러 오시는데 오늘은 이 근처에 약속 있다고 미리 와 계셨네요. 다른 때 같았으면 체험하지 못했을 텐데…. 운이 좋았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나가다 문을 두드렸을 뿐인데 굉장한 경험을 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5시쯤 국궁장을 나와 묵을 숙소를 검색해 보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또 비가 내렸다. 가장 가까운 숙소를 검색하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숙소 세 개가 모여 있었는데, 모두 오래돼 보였다.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숙소였지만, 내리는 비 때문에 다른 곳을 찾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저녁은 숙소에서 배달 치킨으로 마무리하며, 오늘은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릴까?’ 여행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쏘기 체험으로 하루가 만족스러웠던 환이는 치킨을 다 먹은 후 체험학습 보고서를 꺼냈다.
자전거 여행 이틀 째, 환이의 체험학습 보고서
전날 87km를 와서 힘이 들어 오늘은 50km만 왔다. 쉬엄쉬엄 가려고 했는데, 내일 온다던 비가 오늘 내렸다. 꽤 많이 왔다. 나는 우비가 없어 방수되는 잠바를 입었다. 그런데 밝은 광장에 오니 비가 그쳤다. 그 후로 비는 오락가락했다. 가는 길에 활쏘기 하는 곳이 있어 들렀는데, 양궁장이 아닌 국궁장이었다. 활이 얼마나 멀리 나가냐고 물어봤더니 약 150m라고 하셨다. 나는 서울랜드에서 활쏘기를 해봐서 조금 쉬웠다. 활쏘기를 끝내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다가 슬슬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다시 비가 내려 숙소에서 치킨을 시켰다. - 하남에서 여주까지 5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