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새로운 연재 글의 예고편에 해당합니다. 원래 다른 3가지 분야를 기획했었는데, 시간 관계상 해당 기획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잠정적으로 보류하고 시간 내에 쓸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을 해보았습니다. 연재는 9월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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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다.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0% 이상이 게임을 하는 추세다. 연령대별 비중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10~30대가 제일 게임을 많이 하는 추세이긴 하나, 50대 게임 이용자 수의 비중도 57%에 달할 정도다. 이제 게임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전국민적인 취미가 되었다.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소설, 영화 등 다른 문화매체가 그렇듯 게임 역시도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짧게는 수십 시간, 길게는 수백 시간의 플레이 시간을 요하는 PC나 콘솔 게임에서 1회 플레이 시간이 짧은 모바일 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전체 플레이어 중 모바일 게임 플레이어의 비중이 90.9%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PC는 57.6%, 콘솔은 21.0%에 그쳤다.(출처 -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는 원인에는 '과로 사회'가 있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하루가 다르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휴식을 원한다. 복잡한 규칙과 더불어 장기간의 시간을 소비하는 문화콘텐츠를 소비하기 어려워졌다. 부족한 여가 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가 유행하게 된 이유다. 현대인들은 모든 문화매체를 가리지 않고 항상 '사이다'를 찾으며 숏텀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의 대중문화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는 웹툰, 소설, 영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이며 게임 역시도 마찬가지다.
숏폼 콘텐츠는 장단이 명확하다. 우선 콘텐츠의 대부분이 SNS나 유튜브 등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사람들에게 이득이 된다. 굳이 서론과 결론을 넣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핵심만 말하기에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쉽다. 내용을 이해하기 용이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소설도 장편과 단편의 미학이 다르듯이, 숏폼 콘텐츠라 해서 열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숏폼 콘텐츠로 구성된 모바일 캐주얼 게임들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제일 먼저 짚어봐야 하는 형식적/내용적 측면에서 굳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보니 콘텐츠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본편의 내용을 곱씹으며 충분히 사고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한 번 가볍게 즐기고 나서 기억 속에서 날아가버리는 휘발성 콘텐츠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얻는 건 아무것도 없이 그저 관성적으로 시간을 죽이고만 있을 뿐이다.
숏폼 콘텐츠의 문제점이 도드라지는 문화콘텐츠는 현세대 모바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점은 열화 되거나 없어지고, 단점은 커진 형태다. 노골적인 BM(Business Model)으로 인해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내 모든 콘텐츠를 즐길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플레이어 간에 극한의 경쟁을 유발하는 리니지-라이크 류 게임 디자인은 물 빠진 독처럼 돈을 쏟아붓게 만든다. 페이트/그랜드 오더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같은 캐릭터 가챠 게임들은 원하는 캐릭터 하나를 뽑기 위해서 수십, 수백만 원의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플레이어가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측면이자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 메커니즘은 과거 프린세스 메이커에서부터 시작된, 흔하게 볼 수 있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일 뿐이다. 기적의 검같은 방치형 게임은 그나마 남아 있던 플레이 메커니즘조차 전부 자동으로 돌려버리고 아이템 수집과 뽑기에만 집중한다. 나름대로 스토리와 캐릭터성을 내세워 차별화를 노린다고는 하지만, 서브컬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을 위해 휴식의 가치를 지닌다고는 하지만, 굳이 그것이 게임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지, 정작 중요한 플레이 과정을 자동으로 돌려버리는 게임에 플레이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건 비단 필자 개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현세대 캐주얼 게임의 게임 플레이 과정은 열화 되고 BM으로 인해 지불해야 할 비용만 늘어나 기형적인 괴물이 되었다.
필자의 본 기획은 이러한 현세대 캐주얼 게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캐주얼 게임이라고 해서 핵심 플레이 과정을 자동으로 돌린 채 아이템 수집과 캐릭터 뽑기에만 열광하는 게임들 말고는 캐주얼 게임이 없을까? 게임 캐릭터 하나에 수십, 수백을 쏟아붓지 않는 캐주얼 게임은 없을까? 짧은 시간 동안 플레이할 수 있으면서도 충실한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을 갖춘 캐주얼 게임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혹시 사람들이 그저 좋은 캐주얼 게임을 모르고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해당 게임들만 플레이하게 되고 그런 부류의 게임들만이 캐주얼 게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런 게임들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좋은 캐주얼 게임들조차 '캐주얼 게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레이어들이 흔히들 무시하는 캔디 크러쉬 사가 같은 게임은 뽑기나 아이템 수집에만 열광하는 캐릭터 가챠 게임이나 방치형 게임에 비하면 스테이지가 넘어갈 수록 도전적인 스테이지가 나오는 등 플레이 메커니즘 측면에서 잘 만들어진 좋은 캐주얼 게임이다.각1)
글의 형식은 특정 게임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데 치중하기보다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정한 게임의 체험을 나누는 수기 형식에 더 가깝다. 물론 게임을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리뷰와 수기의 중간 어딘가에서 글을 작성하게 되겠지만, 작년에 연재했던 두 가지 내러티브 때처럼 딱딱한 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1) 캔디 크러쉬 사가도 고난도 스테이지로 가게 되면 아이템 결제가 없이는 클리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괴랄한 난이도를 보이곤 한다. 하지만 가볍게 즐기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과금 요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게임인 것은 맞다.
참고문헌)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