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엄마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 똑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는 내가 크는 동안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너희를 낳은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인간이 인간을 잉태하는 것이 당연히 큰 일이지' 하고 시니컬하게 생각도 했다가,
사춘기 시절, 속깨나 썩이고 나서는 '진짜 그렇게까지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서먹한 아빠도 내가 태어났을 때 나에게 속싸개를 해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 시키는 모든 순간 정성스럽게 임했다고 했다. 태어났을 땐 그렇게 애지중지했다면서 크는 동안은 왜 그렇게 엄했나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마 2023년 5월 30일 오후 5시 14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출산예정일이 지나 정기 진료일에 마침 진통이 와서 병원엘 갔는데 당장 응급 수술로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으며 태변을 볼 것 같고 태반의 위치도 안 좋다고 했다.
수술은 예상에 없어 금식 없이 갔던 터라 생생한 정신으로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낸 그 시간, 내 뱃속에 있던 아기의 첫울음을 들은 시간이 5시 14분이다.
내가 태어난 시간은 맨날 잊어 엄마에게 물어보면 엄마는 바로 그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신기했는데
나도 당연히 그렇게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잊지 못할 시간, 5시 14분.
아기를 낳고 키우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라는 것이 낯설었다. 마치 새로운 영역의 감정이 열린 것 같았달까. 볼에 발긋발긋 태열이 올라왔다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에도 대견해 미칠 것 같고, 응가하려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에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두둥실 떠다녔던 것 같다.
채아가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할 때쯤, 침대에 누워 마주 보고 있으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살그머니 만져주었다. 아기에게 사랑을 받는 느낌이라 따듯하고 울컥하고 소중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조물락 조물락 거리며 내 얼굴을 만지다가, 수면의식을 하면 스르르 잠드는 아기를 보니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아닌가 싶었다. 내 입에서 천사라는 단어가 툭 하고 튀어나오다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건가보다.
어느 날인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는데 채아는 계속 칭얼거렸던 때가 있었다.
계속 장난감을 쥐어주어도 달래 지지 않길래 할 일을 잠깐 멈추고 안아줬다. 칭얼대던 얼굴이 그 순간에 나를 보며 방긋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웃으며 손을 뻗어 내 볼을 만져주는데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뭐가 중요한 지 모르고 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싶었고 채아한테 미안하고 고마웠다.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채아가 "엄마 엄마 엄마"하고 달려와 꼭 안아준다. 하원하고 집에 오면 안방 문을 열고 "엄마"한다는데, 참 마음이 쓰리고 미안하다. 채아는 모르겠지만, 퇴근길에 나는 집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앞선 사람을 모두 제치고 빠른 걸음을 한다. 뛸 수 있으면 뛰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재밌게 놀아주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피곤한 몸을 끄는데 힘이 들어 괴리감에 빠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작은 우주가 나의 모든 것을 바꿨다.
그 조그마한 게 엄마 아빠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작은 일 하나라도 아이를 생각해야만 하고, 생활의 모든 것은 아이에게 맞춰 돌아간다.
아이가 잘 자는 것이 그날 하루 마무리에 지대한 영향이 미치고
내 밥은 안 해 먹어도 아이 밥은 꼭 내 손으로 해준다.
이사를 갈 때도 아이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아이를 웃게 하려고 못난 표정과 이상한 소리를 계속 내는데 행복하다.
아이와 함께 외식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고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들로 열심히 찾아본다.
하다못해 무의식 중에 흥얼거리는 음악도 동요가 되고
꿈속에서도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는 걸까?
이렇게 예쁠 수도 있는 걸까?
이렇게 미안할 수도 있는 걸까?
이렇게 먹먹할 수도 있는 걸까?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자식 키우는 마음, 부모 된 마음.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채아를 낳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