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크리스마스 명작, 나홀로집에나 해리포터 말고 <아더 크리스마스>
바야흐로 12월도 막바지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그 말인즉슨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란 뜻이다. 물론 나 역시 지난 28년 간, 크리스마스 당일에 특별히 시끌벅적하고 휘황찬란한 파티를 한 적도 없고, 큼지막한 선물을 한아름씩 주고받은 적도 없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당일에 명동에 갔다가 행복감은커녕 인류애를 잃고 왔다거나, 집에서 TV만 보다가 어영부영 지나가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9번째로 다가오고 있는 크리스마스에 또다시 가슴 설레는 건 정말이지 미스터리다. 크리스마스를 의미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 가랜드, 캐럴, 심지어는 빨간색만 봐도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크리스마스 특수' 감성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산타클로스 이야기, 크리스마스 재롱잔치의 경험들과 커가면서 자연스레 본 러브 액츄얼리, 나 홀로 집에 등의 영화들로 인해 우리도 모르게 후천적으로 '크리스마스 감성 유전자'가 주입된 걸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렴 어떤가. 기념일을 챙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나치게 변화가 없는 일상은 사람들로부터 일상의 기대감을 빼앗고, 이는 곧 내일을 버텨낼 힘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1년 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었던 만큼, 그 반작용으로 찬란한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더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붐비는 길거리나 가게들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없기에, 더 의식적으로 크리스마스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게 됐다. 그중, 요즘 안보는 사람 없다는 넷플릭스에서 귀하디 귀한 크리스마스용 애니메이션을 발견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동안 왜 몰랐었나 싶을 정도로, 낮은 인지도에 비해 완성도 있는 스토리라인과 따뜻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장르의 특성상 당연히 현실성도 없고, 인생의 복잡함이 담겨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매력적이다.
평상시에 느낄 수 없던 과장된 행복과 비현실적인 사랑 같은 것들이 닫혀있던 순수성의 문을 쾅쾅 두드리는 느낌이다.
'거기 누구 없어요?'
넷플릭스 숨은 명작 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
<아더 크리스마스>는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다. 픽사, 디즈니, 드림웍스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주로 소비하는 우리나라에서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은 그다지 '잘 팔리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아닌 듯하다. 대부분 알만한 작품으로는 <몬스터 호텔> 시리즈 정도랄까. 그래서 그런지 <아더 크리스마스> 역시 흥행하지 못했다. 2011년 개봉작으로,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연도에 개봉을 했던 건데, 영화를 좋아하는 나조차 제목마저 생소한 걸 보면 어지간히 흥행하지 못했나 보다.
개봉한 지 9년이나 됐는데 이렇게나 인지도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기대감 1도 없이 넷플릭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기도 했고, 가볍고 행복한 영화를 보며 점심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점심을 다 먹고도 설거지를 미루며 볼 정도로 빠져들었고 결국은 창피하지만 울기까지 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영화 도대체 왜 안 뜬 거야???
본격 '어른들 혼내는' 애니메이션
일단 영화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산타클로스 가족은 매년 크리스마스에 첨단 음속 비행기 S1을 타고 요정들과 함께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하지만 실수로 어쩌다 한 어린이의 선물이 배달되지 못하게 된다. 가족 중 일부는 단 한 명이 선물 받지 못하더라도 전체 비율로 따지면 거의 0퍼센트나 다름없는 실패라며 이 일을 덮으려고 한다. 반면 주인공 아더는 그 한 명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구식 썰매를 타고 선물을 전해주러 고된 여정을 떠나고, 영화는 그 와중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조명한다.
찾아보니 로튼토마토 평점도 꽤 높고, 많지는 않지만 재밌게 봤다는 온라인 평들도 꽤 많았다. 게다가 더빙 배우들도 제임스 맥어보이, 빌 나이 등 유명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었다. 감동적인 스토리라인, 9년 전 제작임에도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 나쁘지 않은 캐스팅 라인업 등 영화의 긍정적인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흥행하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실패 요인은 애매한 타겟층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손잡고 보러 가서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어른들의 사회가 반영되어 있달까. 그렇다고 어른들끼리 보러 가기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로 보였던 시절에 개봉해버렸다. 많은 성인들이 당당하게 영화관에 가서 돈 내고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이 2013년도 <겨울왕국> 이후 임을 생각해보면 더욱 답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거의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영화의 구성상 마지막 한 아이의 선물을 주러 떠나는 것을 쉽게 포기하고 '이만하면 됐다'라고 안주하는 아더의 형 스티브와 아버지 산타클로스의 모습에서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수치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단 한 명뿐인 실패가, 확률상으로 0.000000015..%쯤되는 너무나 작은 수치이기 때문에 사실상 한 명으로 칠 수도 없다고 얘기한다. 선물 받지 못한 아이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47785BXK 어린이'라고 부르며, 그 한 명의 어린이만을 위해 S1 비행기를 가동하기에는 S1이 너무 무리해서 망가질 거라고 우려하며, 어린이보다도 기계를 소중히 한다. 또한 요정들에게 밤새 일을 시킬 수도 없다느니, 해가 뜨기까지 두세 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느니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주 대단할 정도다. 게다가 상사나 마찬가지인 아빠 산타클로스는 무능력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으며, 실무자인 형 스티브는 어린이들을 위한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정을 쏟는 게 아니다'라며 선물을 배달하러 가자는 동생 아더를 질책한다. 스티브는 군복을 입고 휴대폰 같은 호호 기계 속 미션 달성률에만 집착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들 아닌가?
그러는 아버지와 형을 앞에 두고, 같은 상황에서 아더는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 선물을 받지 못한 어린이가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찾고, 그웬이라는 어린이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가 느끼게 될 실망감을 먼저 떠올린다. 아더에게 숫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더에게는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아이들의 기대감과 설렘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진짜 미션이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이라도 크리스마스날 아침 실망한다면, 절대 그것은 성공한 크리스마스 미션이 아니다. 아더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런 아더의 모습이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매일같이 강제로 주입받는 수많은 수치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 숫자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잊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뿐이 아니다. 직장에서 마주치는 거대하고 다양한 수치들 속에서조차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 개개인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졌다.
뭐든지 나에게 닥치면 100%다.
신체의 23.5%만 고통스럽거나 마음의 34.2%만 행복하는 그런 인간은 없다.
진심만 있다면, 단점조차도 행동의 원동력
사실 아더는 엄청난 겁쟁이에 덤벙이다.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S1은 물론이고 작은 크레인조차 못 타고, 손만 댔다 하면 모든 일을 망친다. 무언가를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형 스티브와 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동경하기만 할 뿐 작은 요정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존재다. 야망도 욕심도 없다. 그저 우편국이라는 명목 하에 작은 방에 갇혀, 산타클로스에게 오는 아이들의 편지를 읽고 답장해주는 게 유일한 행복이다.
그런 아더가 안전장치조차 없는 오래된 썰매를 타고, 무작정 선물 배달을 위해 세상으로 나간 이유는 다름 아닌 그 '겁' 때문이다. 썰매에서 추락해 통통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려는 무모한 생각을 하고, 그러다가 마법가루로 하늘을 날아올라 썰매를 다시 잡아채게 될 수 있던 것도 '겁' 때문이다.
바로, 그웬이 크리스마스날 느끼게 될 배신감과 실망감에 대한 '겁' 말이다!
아더의 겁은 결국 그웬이 그토록 바라던 자전거를 받고 세상 그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띠게 했으며, 온 세상 어린이들 중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겁쟁이라서 가족들의 우려와 괄시를 한 몸에 받던 아더는 결국 아버지와 형의 인정을 받고 차대 산타가 된다.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결론일 수도 있다. 어딘가 모자란 할아버지 퇴물 산타, 포장밖에 모르는 어리숙한 요정 브라이오니, 겁쟁이에 덤벙거리기까지 하는 아더, 아날로그 요소의 총집합체 구형 썰매. 모자란 이들이 모여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고, 난관을 헤쳐나가 결국 해피 엔딩으로 가는 스토리라인은 전혀 새롭지 않다. 되려 진부한 전개 이리라.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된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가 완벽하지 못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성공해내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이렇게나마 보는 것이 좋은 것이다. 조금은 과장됐어도 말이다. 위안이 된다. 단점인 줄만 알았던 요소들이 오히려 장점이 되고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한 원동력이 될 때, 난관인 줄 알았던 상황이 역전되어 기회가 될 때, 우리는 짜릿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부족한 나를 끌어안고 별다를 것 없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닐까.
이 영화의 어디서 눈물을 흘렸냐 묻는다면, 꽤나 여러 번이라 모두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다. 왠지 애니메이션에 눈물샘이 잘 열리는 타입이랄까. 하지만 가장 크게 감동을 받았고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아래 장면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음은 물론이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빠 산타클로스와 형 스티브의 놀라는 표정. 그 옆에,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그 아이의 순수한 미소만큼이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더의 표정.
아더의 표정 묘사가 실로 기가 막히다. 현실 속에서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인간은 없겠지만, 오히려 만화적 표현 덕분에 이타적인 아더의 성격과 진실된 행복감이 배로 잘 표현됐다. 단 한 명만을 위해서 그 큰 희생을 하고도, 그 한 명이 짓는 미소 덕분에 저렇게까지 행복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크리스마스 영화하면 나 홀로 집에, 해리포터 등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조금 특별하게 <아더 크리스마스>에 주목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아더에게 혼도 좀 나고, 오랜만에 루돌프가 끄는 썰매나 전형적인 산타클로스의 모습도 보고, 감동의 눈물도 흘릴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은 더 즐겁고 유익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너무 무겁고 힘들었던 한 해였다.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답게, <아더 크리스마스>를 추천해본다!
아더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