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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y 10. 2020

'인간 수업'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그들의 선택지에는 옳은 답이란 없다. 틀린 답만 있을 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작품을 보는 것은 킹덤 이후로 두 번째다. 킹덤에 대한 인상이 '외국에서만 보던 장르를 한국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웰메이드 작품'이었다면, 인간 수업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한국형 범죄 드라마'랄까. 굉장히 찜찜하고 굉장히 묘하다. 익숙하지 않은 어린 배우들이 이끌어나가는 학생들의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거나 장난스럽지 않다. 가장 약한 이들이 살아가는 가장 악한 세계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일까. 무튼 하루도 안돼 10편을 모두 봐버리고 생각이 많아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글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프라이버시, 파헤쳐야 하는가 지켜져야 하는가


이 드라마가 던지는 몇 가지 난제 중에 하나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이다. 프라이버시를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집안의 사적인 일. 또는 그것을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라는 결과가 뜬다. 프라이버시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해진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90년대~2000년대만 해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집에서조차 사생활을 묻고 파헤치는 것이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애초에 지켜야 할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개인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고 밝혀질 프라이버시라 봐야 개인 일기장이나 수첩 정도였을 수도. 아무튼 가방 검사라든가 부모님의 직업을 학교에서 묻는 일은 다반사였고, 입사 지원서에 사진과 부모님의 직업을 적는 일도 이상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점차 휴대폰이 보급되고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속에 각자의 방이 생겼고 휴대폰이라는 금고가 생겼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성매매에서 학생인 지수와 규리가 포주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미성년자인 민희가 조건 만남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인터넷과 휴대폰 덕분이다. 얼굴을,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고도 서로 소통할 수 있고, 현실 세계의 나와는 또 다른 나를 인터넷 상에 탄생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만의 기록을 휴대폰에 기록할 수 있고 자동으로 기록된다. 사진, 지출내역, 연락한 이력 등을 말이다. 물론 지수처럼 비밀번호를 한 번 털리면 이 모든 정보가 노출되기 십상이지만. 이렇게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프라이버시를 대량 생산해 내고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쉬운 시대가 됐다.


프라이버시는 밝고 깨끗한 양지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수, 규리, 민희, 이 실장의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다시피 프라이버시는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지켜줘야 할 개인의 비밀, 그 이상일 때가 많다. 소위 '진상 고객'에게 일을 당해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민희의 프라이버시라든가,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스스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 알선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된 지수의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프라이버시'라는 그늘 하에 두기에는 다소 위험하고 위태롭다.


학주의 '가방 검사'라든가 경찰의 '상담과 취조'는 어찌 보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침해 덕에 누군가는 목숨을 건지고 누군가는 보호를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이 문제에 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선택지에는 틀린 답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 졸라 끌어안고 버티는" 방식밖에는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지수가 소중하게 아끼던 소라게처럼.

   

결국 지수 스스로도 소라게였다. 약하고 조그마한 껍데기에라도 프라이버시를 숨기고 움츠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틀린 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라게. 결국 키우던 소라게가 도망가던 아버지에게 밟혀 죽은 이후부터 그의 삶은 강제로 숨을 곳을 잃고 위험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중성, 진실과 거짓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이중성으로 가득하다. 이 이야기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물론 미성년자 성매매는 범죄가 맞지만, 그 길을 택하는 학생들의 사연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인간 수업의 주인공인 오지수에 대해,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고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며 타의 귀감이 되고 웬만해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 하지만 실제 오지수의 삶은 아주 '웬만하다'. 학원 수업을 듣다가도 성매매를 알선하며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배규리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상위층 계급의 외동딸로 태어나 모자람 없이 자랐으며 학습 수준도, 사회성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녀야말로 이 성매매 사업에 가장 흥미를 보이고 '장난'처럼 재밌어하며 가장 대담하게 사업을 키워나가는, 어찌 보면 악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누군가가 내리는 평가와는 정반대인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남들이 보는 나인가, 나만 아는 나인가.


어둡고 더러운 곳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틀린 인물'들. 이들에게 결국 기댈 곳은 틀린 답을 택한 그들 서로밖에 없다. 자신과 같이 틀린 답을 택한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기도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현실과는 멀지만 내가 꿈꾸는 나의 삶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틀린 답을 들키는 순간,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틀린 답안지마저 갈가리 찢긴다. 답을 고칠 기회마저 빼앗긴다. 칠흑같이 짙은 어둠은 성냥불 하나에도 아프다. 어두운 나는 어두운 곳에 그대로 두고, 언젠가는 밝은 곳으로 올라가 '평범한 삶'을 살 꿈을 꾸던 지수처럼, 이중적인 삶은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보호장비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와 이들의 이중성이 틀리고 그릇된 것일까. 이들의 선택을 부정할 수만 있을까. 그들에게 옳은 답을 보여주고 그 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적도 없는 나는, 차마 주인공들을 욕만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 후반부에서 지수는 규리를 구하러 가면서 꿈을 꾼다. 꿈속에서 지수는 시험을 본다. 그리고 '꿈

'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평범하게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꿈. 그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지수가 키우는 소라게가 선생님이 키우는 장수풍뎅이를 밀어낸 후 껍질 속으로 숨는 장면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자신을 캐묻는, 즉 진실을 캐묻는 이를 밀어내고 싶어 하는 지수의 속마음, 즉, 자신의 이중생활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지수의 꿈이 이 장면에 투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why가 없는 인물 설정


그럼에도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인물들의 why가 이야기 속에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마저도 '프라이버시를 캐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관음증'을 극대화시키려는 연출, 혹은 기타 사유로 의도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내용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에 몰입하며 보다가도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고 집중이 안 되는 순간들이 두어 번 남짓 있었다.


이 실장은 도대체 왜 이 사업에 그렇게나 충성도 높게 자신을 바치는지, 그러다가 목숨을 잃을 지경까지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민희는 어쩌다가 성매매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지수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혼자 버티다 포주가 됐는지.


최민수 배우님의 찰떡 역할이었던 이실장


인간 수업의 팬이 되어버린 한 명의 시청자로서, 지나친 궁금증이 만들어낸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의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고 싶어 하는 제작진의 노력이 보여서인지, 인물 설정에 대한 부연 설명들이 더욱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자연스럽게라도 인물들의 'why'가 보였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이야기 진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 수업'의 팬이 되었다.


마침 n번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알선되는 성매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자극적인 소재와 감각적이 연출, 그러면서도 직접적인 묘사는 꽤나 자제된 영상들. 어찌 보면 성매매를 주선하고 그를 서포트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착하고' '그럴듯하게' 연출된 탓에, 많은 사람들, 나조차도 마냥 기분 좋게 드라마를 감상할 수는 없었다. (재미와는 별개로)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경찰과 학교라는 시스템, 그 속에 아이들에게 진짜 관심을 가져주는 경사와 선생님들의 손에 점차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그분들의 손길과 관심은 '프라이버시'를 파 헤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숨기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이중생활'을 강제로 끌어내려는 모습으로 보일 수 도 있지만, 결국 민희의 입을 열게 했고 이 사업을 멈추게 했다. 마지막에는 지수와 규리가 잡히기를 바라면서 드라마를 감상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잡히지 않았지만, 시즌2에서 "혼자 졸라 끌어안고 버티는" 규리와 지수가 담임선생님인 진우와 경찰인 해경과 어떻게 그들의 폭탄을 처치할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치솟는다. 비극적인 현실의 성매매 사건들과는 다르게 그래도, 이야깃 속에서라도 이들의 문제가 잘 해결되고 대가를 잘 치르기를, 그리고 미성년 성매매를 했던 상대방들에 대한 처벌도 무겁게 가해지기를. 마음속으로 빈다.






규리가 자꾸만 접어서 지수 책상에 쌓아두었던 과자 봉지로 접은 쪽지(?)들. 친구들에게 혹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비밀스레 말을 전하고 싶을 때 자주 접던 모양새다. 규리는,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은 마음에 무슨 말을 품고 있길래 이렇게나 많은 쪽지를 건네었을까 싶었다. 펼쳐봐도 읽을 수 있는 글은 없겠지만, 힘들게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추측해보게 한다.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면(제발!) 그들의 죄가 처벌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말 못 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드러나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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