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 초라해지는 마음

by 갈대의 철학

나이를 먹으면

- 초라해지는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나이를 먹고 나니

배는 부르지도 않는데

마음도 가득 채워져 가지 않는데

다가올 영혼들만

우글거리며 지나가는구나


지난 나이에

생각을 거듭에 거듭을 하니

다가올 영혼들이 가까이 다가서고

그때서야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이제야 마음의 물결들이 요동쳐 가니 말이다


이루지 못할 그리움들이

밥풀떼기 기세에 눌러버린 아쉬움에

군더더기 마냥 이리저리 붙어 다니니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거다


며칠을 굶주린

개줄이 목줄이 되어버린 개떼들과

하얀 들판에 으르렁대는

그대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대신할

승냥이 떼들의

등짝이 땅에 꺼질 듯이

사모하며 갈구하는 눈빛들

그 앞에서도 당당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점점 작아지는 마음이 야속하거늘

나의 골격에 대한 한 번쯤은

예의는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털털거리며

체구에 걸맞지 않더라도

옷이라도 입으면

부끄럽지도 아니하고

당당하게 맞설

이유라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숨을 곳이라곤 없는

허허벌판 들녘을 바라보는 심경이

바위에 가까스로 걸쳐있는 멋스러움도

낙락장송의 지조를 지킬 수 있는

희생에 대한 강요에는 비할 데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비기지는 못할 바에는

널브러진 내 팔들과

너덜너덜 너울너울 춤추듯 나풀거리는

지구의 자전축과 만나고


우주의 중심이 되고 이어주는

튼튼한 개다리의 일생이 있어

너를 지탱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말이다


내게 있어 너에게

아주 작지만

든든한 위안이 못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는 마시게

그게 그대가

그토록 열망하고 갈망하듯 기다리는


한쪽 폐에 숨을 쉴 수 있고

한쪽 켠에 뜨거운 심장이

팔 딱 펄떡 아래 노니는 것이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개구리들의

처절한 몸짓에 가위눌리어도

그 해 여름날 메뚜기들이

더위를 못 견디며 떠나가는

그들의 의미에 해석은 두지 말고 가세


뭐 어떻겠는가

그대 곁에서

미약하나마 다가설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일세


시간아

인생아

세월아

.

.

.

.

내 너희들을

순리대로 지나쳐 왔는데

어찌 내게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느냐 말이다


내 그대들을 위해 헌신짝처럼

버려진 마음들을

고이고이 종이비행기 접고

주섬주섬 두 손 모아 기도드리며

사뿐사뿐 히 즈려 밟고 내딛는 마음을

네 마음의 파동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하니

그 얄팍하고

그 알량한

그 미천한 계급보다 더 천한


내 동심의 다림에

구정물을 끼얹지는 마세나

그나마 미약한 양심이라도 남아있으면

동정심이라도 불러일으켜 다오


그러면 나는 너에게

떠날 수 없는 슬픔들을

안겨주지 않으리라


꿈도 작아

마음도 초라해져

거기에 점점 늙어가며

몸에 제살 비껴가는

삐죽삐죽 내밀어주듯

웃는 네 모습 하나만큼은

대낮의 민낯보다 더 두터운

가히 황진이도

놀라우리 만큼 기운을 지녔으니


하늘을 우러러

바라볼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돼지의 모가지도 슬퍼할 겨를 없이


무심한 세월 탓만 하리

지나는 여정길에 되묻고

이 길이 그 길이 맞다고 하면

맞장구쳐주는 게

내 살아온

인생의 전부가 되었단 말인가


아 슬프도다

마음 아프구나

약하다고 하기에는

아직 못다 이룬

나의 지난 청춘들이 더 구슬프다


지금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니

예전에 강인한 모습은 점점 어딜 가고

사그라지고

세월의 등쌀에 휘말려가는

대신에

넓어졌던 마음은

세월에 의존하고 따라가게 되더라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현실의 하늘을 바라보며

언제나 유유히 흐르는

저 구름과 색깔들이 늘 변치 않고

한결같았었던 마음을

지울 수가 없더라


그게 네 자연의 생리 현상이지만,

나에게도 찾아온 생리현상

난 그것을 합당화할 정당화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다시 찾아오는 마음은

나로 하여금

발걸음만은

가볍게 하며 떠나가라 하네


2019.12.27 부산 해운대 빛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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