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의 끝에서
- 만남의 끝에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
긴 여정의 끝에서
- 만남의 끝에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자 다시 시작이다
출발이다
망망대해에 일엽편주의 닻을 올리자꾸나
심금을 울리는
어느 뱃고동 소리는 아니더라도
영혼을 깨우는 북소리가 아니더라도
칙칙폭폭 기적 소리에
내 몸도 싣고 떠나가는
네 마음 따라가련다
그런데 변한 것이 없더구나
사람도 -
같은 곳을 지나도
변함없는 그 자리에 묵묵히 지키고
기차도 -
언제나 두 다리의 평행선을
한결같이 떠나 오고
자연도 -
칙칙폭폭 스쳐 지나는 풍경들에
사계절마다 곡선과 직선을 반복하고
출발역도 -
늘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고 오르고 내리며
도착역도 -
북적대는 인파 속에
어디를 가는지를 묻지도 않으며
두물머리 지나도 -
얼마 전 다녀왔던
운길산을 바라보며 서운한 맘 감출 길 없고
명동성당 길 걸어보아도 -
참회의 기도는 온 데 간데없고
관광객들만 북적거리고
청계천도 -
예전에는 비가 조금 내려도
철문을 닫던 시절에
오늘은 소낙비가 내리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의 문도 열어 놓았고
남산도 -
봄 꽃눈 날리고 필적에 드러난
너의 고운 자태에 반해
산책하던 날에 두 팔 벌리던
마음은 어딜 가고 날아갔나
어느새 녹음은 짙어
소나기에 우산 쓰고 있고
모든 게 그대로야
그래도 남는 것은 너일 뿐
예전처럼 똑같아
그렇지만 마음만은 달라
바람도 있잖아
시시 때때 찾아주는 고마운 친구
구름도 있잖아
바람 곁을 늘 붙어 다니며
바람결 따라
네 모습도 변한다지만
지나왔지만 아쉬웠고
잠시나마 짧지 않은 여정길이었어
세상사 이야기 나누는 것이
참 좋았어
근데 그거 아니
내가 돌아온 날
네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작은 것을 늘 바랐지만
세상은 내게
더 큰 것을 요구하고 바라는 것
아 그래도 괜찮아
네가 항상
곁에 있어 주어서 든든하니까
그동안 나와 함께
동고동락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사랑한다
나의 여정과 만남들에서
만남의 끝에서 우리 다시 시작하는거야
2019.12.27 부산 해운대에서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