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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 고둔치 두 노인

by 갈대의 철학

발걸음

- 고둔치 두 노인



詩. 갈대의 철학


고둔치 동행 길에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두 노인

산에서의 만남도 귀한지라

서로의 오던 길이 틀려도

만나는 곳은 한 곳이네


한걸음

또 한걸음 내딛는 내 발걸음아

그 많았던 기운은 다 어데 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내 달음질에

두 노인네 여유 있는 발길만 재촉해 주는구나


지나온 길 나란한 두 어깨 위에

무수한 배낭의 무게보다는

무거운 내 발길이 더 초라하고 초췌하다

어떻게 이어왔는데 허망 감만이 위로하고


두 노인네의 한 발걸음이

새의 퍼드덕 날갯짓 마냥

사뿐히 내려앉은

구름 속 밟듯이 하며 사라지


세월을 등에 업고 달관 한지 오래되었는데

여유 백백 유유자적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비단 유구한 세월 탓만 아니하더라


앞서는 내 발걸음에 두 노인네

또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네


내 발 두 걸음에

한 발걸음 앞에 두 노인네 뒤에 가고


뒤쳐지는 내 발걸음에

두 노인네 한 걸음은 동행따라 가다

천리길에 한걸음질 따라잡고

두 걸음에 만리타향 길 그리워하는구나


세 걸음 달려보니

두 노인네 뒤돌아 안보이고

다섯 걸음질에

안갯속 누구인지라 앞만 보고 가니

얼핏설핏 하는 주춤 세에 미련 두어

한 고개

또 한 고개 넘나드


어느새 두 걸음

뒤쳐지니 두 노인네 뒤돌아 보이고

한걸음 뒤쳐지니

두 노인네와 다시 만난다


고둔치 계곡에

더위 식히라 잠시 머뭇거리고

두동행에 한걸음 뺏아기니

두 노인네 말씀 나뉘는 소리 들리고

세 걸음 빼앗기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제야 걷다 보니

세월 속 구름 속

안갯속을 또다시 걷다 보니

여섯일곱 걸음 빼앗기니

두 노인네 어느새 안갯속에 사라지고 만다


급한 마음 여유 마음 앞에

당하지 못하고

여유 마음 앞에 떠나가는 마음 잡지 못하네


막바지 울 어제치는

매미 울음소리만이

내 갈길의 이정표가 되어가는구나

2016.8.14 치악산 고둔치가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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