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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May 20. 2021

산죽(조릿대)

- 죽어서 꽃이 된 사연

치악산 상원사 보은의 종


산죽(조릿대)

- 죽어서 꽃이 된 사연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10년을 살아야만

꽃을 피워야 하는

너의 삶은


비바람에

눈보라에

폭풍 속에서도

민족정기의 삶을 이어오고

지탱해 왔더구나


죽어야만 다음 생을 기약하고

그 자리에 그 뿌리는

더 이상 피지 못할 운명을

순수히 받아들인 너


늘 소나무의

의연한 기풍을


늘 대나무의

대쪽 같은 성품을 꿈꾸며

항상 푸르름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 너는


언제나 푸르지 못할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한 채

꺼져가는 촛불  한 자루의 마음도

강산이 변해야

네 모든 것을 안고 쓰러지듯


5월 신록의 마음은

어딜 가고

이미 가을의 전설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시사철 푸른 마음에


봄이면 피고 지고 하는 것과

여름이면 열매가 영그는 것과


가을에 물들어가는 단풍에

수확의 기쁨은 농부의 마음


겨울에 차곡차곡

한겨울을 지내야만

일 년을 맞이할 수 있는 너


그러한 삶도 살고 싶다마는

늘 푸르지 못할 이유를

찾을 길 없는 것이


네 삶의 전부이자

다른 이의

마음까지 보살펴야 하는

마음인 것을


네 고개 떨구고

마지막 몸부림치는 날이

어쩌면 너와 나의

오랜 인연으로 다가서는


나는 떠나갈 마부

너는 거름이 되어

다른 삶을 대신하여 살게 되는 마차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으로도 맞서지 못하는

너였기에


너를 알아주는 이 없어도

네 운명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럴 수밖에 없이 타고난

네 모진 생명의 잉태에 대한

근간이요 근원이 된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어느 일부분이

되어주어야만 하였던 너였기에


너와 나의 운명이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이라면


10년이 돼서야 내 운명이라는

그래서 화려하게

울부짖지도 않을 만큼


조용히 세속에 잊혀

살아가야만 하는

사연이 되었더구나


그렇게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고

내 마음은 어디에서 만날까

바람은 어디에서 멈추고

내 마음은 어디에서 머무를까


나의 인생도

나의 발걸음도


가다 서다 말다

돌아서서 가는 길이

 발길이요


천상으로 가는

마음이지 않나 싶더구나



2021.5.19  치악산 종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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