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대의 철학 May 26. 2021

휘영찬 밝은 달아

- 귀빠진 날에

휘영찬 밝은 달아

- 귀빠진 날에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내일이 오면

장미 한 송이가 꽃을 피우려

꽃망울 대가 기지개를 켭니다


당신의 밤은

그래도

칠흑 같은

그믐달이 아니어서 좋습니다


사월에 피어나는

금계국보다

아름드리 꺾어놓은

안개꽃보다

망초대 꽃을 사랑한 그대


오늘도

야리야리한

그 꽃잎을 따다 데쳐

오봉상을 차려줍니다


님 그리는 보름달도 만삭이라

내님의 귀가 빠져나온 날 보다

하루가 더 지나가야 하는

하늘 바라보며


세월에 녹아든 마음은

수북이 쌓아 올린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지만

돈독한 사랑은 더욱 다부져 갔습니다


그 옛날

어머니 살아 계시던 겨울이 오면

뒷마당에 묻어두었던

고깔모 장독대 위에 내린 하얀 손자국은

어머니 손맛의 그리움을

그대가 대신하였고


추억이 어김없이 잊힐라치면

흰 눈 같은 그대였기에

더 한없이 내리며 녹아 사라지는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서게 하였습니다


그대가 여태껏 살아온 인생살이에

하얗게 소박맞듯이 내린

흰 서리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대


한 줌의 햇살에 녹아내린

어느 사향의 눈 꽃송이로 다시 태어나도

행복한 마음이기를

늘 간절히 바라던 당신을 위한 기도가

비로소 나를 위한 기도가 되어 버렸을 때


그날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세상이 함께 울어 지쳐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드렸던 그대였습니다


훗날에 기억하려 하겠죠

나의 어머니의 마음처럼

봉분에 쌓아 올린 정을 마다하지 못해

쓰러져도 몇 번이 무너져도

다시 탑을 쌓아 올린 성채와 같은

그대 마음이 되어왔다는 것을요


불어오는 실바람에

수북한 빨래

털털털  

오랜 세월 털어내듯


다 들어간 대못 박음질에

또다시

애석한 망치 소리가 요란하게

멀리 공허한 메아리치듯 들려옵니다


너울너울 춤추며

시위하는  빨랫줄에

살랑살랑 거리는


아직도

그해 겨울바람일 듯

치마가 한없이 나풀거립니다


당신이 있어

늘 배고픔을 잊지 않았지만

잠시 떠난

그리움의 한 조각에

사랑은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씩 비 온 날 땅이 파이듯

세월 지나 떠나온 유수한 마음이

그대 내 마음에 새겨둔 낙관 찍듯이

나만의 당신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요

나는 지금껏


당신의 머슴

당신의 노예

당신의 사랑꾼

당신의 지게꾼


어쩌면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그댈 향한

당신의 통발이 되어왔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불리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부르며 좋았었던 날들이


이제야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은

사랑이라는 오랜 텃새 탓에

정이라는 세월의 텃밭을

가꾸고 눌러앉아


내 오랜 정이

군더더기 마냥 붙어서

따라온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지금껏 그 한 마음을

오래 지키고

보듬고

가다듬고

미련의 잔정들을 털어버렸을 때


내 안에 그대를 받아들이고

돌이킬 수 없는 연정의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왔었는지도 모릅니다



2021.5.25 둔치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