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대추가 포도송이처럼
힘에 겨워 주렁주렁
매달렸네
마치 내 목에 둘러싸인
내 어릴 적 잠에서 깨어난
시커먼 구렁이 한 마리 내목에 옥죄어 오듯
주인집 터에서 자라난 대추나무
어느새 훌쩍 자라서
남의 담장 너머까지 가지가 뻗어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지나는 이가 너무 탐스러워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손을 가져가 한알을 땄다
주인장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시오"
지나는 이
"네. 지나는 길에 너무 탐스럽게 익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욕심인 것을 알기에 내 의사에 반하여 이렇게 남의 것에 손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잘 관리해 주셔서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주인장
"그래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오. 그 마음은 그대의 생각에 뜻이 아직까지 때가 묻어있어서 그러하오"
지나는 이
"네. 옳고 지당하신 말씀 이시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지 않고 방치하며, 그냥 내버려 둔 주인장한테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셔야 합니다. 본질, 즉 이 세상에
아름답다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아니하고 지나가는 이들의 눈과 귀. 입과 코를 망각하게 하였으니, 당연히 주인장한테도 죄가 있다고 봅니다"
주인장
"아니오. 내 땅에서 자라서 열매가 맺혔기에 제 물건이지 어디 가당치 않은 소리요. 이러한 것을 억지 춘향이라고 하잖소. 어디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답을 얻거나 하지 않겠소"
지나는 이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내 땅 네 땅의 경계선이 있는데, 내 땅으로 넘어왔으니, 당연히 제 것이 되는 것이지요. 법이 없으면 모를까? 당연히 이 나라에 법이 우습다고 해도 악법도 법이지 않습니까?"
주인장
"이보시오. 인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을 못 들어봤소. 이것은 법이 아닌 일반 상식 즉 관습이며 문화입니다"
지나는 이
"옳거니 주인장 말씀한 번 잘해 주셨소. 일반적인 관례라고 하면, 나 역시 이걸 따다 먹은 게 크게 죄가 된다는 말이오.
주인장의 논리라면 피장파장인데 그러지 말고 이곳에 터줏대감처럼 대추나무에 사랑이 오랫동안 맺혀 왔으니 주인장께서 너그러이 화통을 푸시오"
주인장
"허허, 이 사람 정말 큰일 날 사람이구려, 그럼 내 좋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하리다. 다음에 나 같은 사람 만난다는 보장을 못하오. 세상에 이러한 변론 아닌 궤변을 늘여놓고 언쟁을 한다는 것은 내 이 나무처럼 묵묵히 살아온 탓이라 여기려오. 그러니 다시는 이곳에 얼쩡거리지 않았으면 바라오"
지나는 이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 보다 훌륭한 처사가 없는 줄 압니다. 용서와 배려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맑게 하며 인내를 기르게 합니다. 저희 집이 길 모퉁이 돌아서면 아주 허술하게 무너져 갈 듯한 초가삼간 다 태워도 곳간에 말려둔 볍씨 한 톨이 자라서 이곳을 지나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줄 거이니 필히 굽이 살피고 가소서"
"겸손은 최대의 화평이요
오만은 최소한에 마음의 안전장치이다"
어느덧 석양지는 노을 바라보면
붉은 마음 안고
그대 품으로 사라지리다
2021.9.19 동해 추암 촛대바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