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마음

- 신들에 침묵의 시간

by 갈대의 철학

뿌리와 마음

- 신들에 침묵의 시간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세월의 무게를 견뎌라

뿌리 깊은 나무는 말없이 쓰러지고

뿌리 깊지 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네


시간의 무게를 견뎌라

처음 얹어 놓은

왕관의 무게는 가벼우나

끝에 쓰인 왕관은

쓰지 않아도 버거우며


마음의 무게를 견뎌라

신생의 별은

파란색으로 빛나고 아름다우나

미지의 마음은

그대 앞에 서면 무용지물이 되어가느니


시간 앞에 약발도 듣지 않아

세월 앞의 성채가 바람에 부서지듯

오랜 기다림에 끝은

허물도 무너지고 사라져 가고

쓰러져 가니

먼지와 바람이 되려 하려네


이 첩첩산중에

나 홀로

바람과 낙엽 밟는 소리와 맞서며

가끔씩 지나가는 새소리가

나의 벗이 전부 인양하거늘


이곳에 쓰러져도

넘어지는 것은

내 마음의 요람이요


이곳에 홀로 서있는 것도

내 삶이 허락한

하늘의 뜻에 전부이거늘


나는 이 길을 걸을 테면

뿌리가 깨어날 수 있도록 잠언을 하고

풀잎들이 춤출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흔들어

요람에서 신들의 오랜 침묵을 깨우리라


가끔씩 지나가는 바람에

그해 못다 떨어진 낙엽이

내 머리 위를 사뿐히 앉을 때는

내 왕관이 세월의 무게를 이고 온

마음보다 가볍게 바람에 떠나보내고


산행길 오르는 계곡에

잠시 드리운 마음 하나 비춰볼 때

내 얼굴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조용한 계곡 웅덩이에 파동을 일으켜

신들의 잠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도록 하려네


2022.4.24 치악산 영원사 가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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