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돌에도 사연이 많으니 함부로 밟지 마라

- 채미採薇(금오산金烏山 가는 길)

by 갈대의 철학

구르는 돌에도 사연이 많으니 함부로 밟지 마라

- 채미採薇(금오산金烏山 가는 길)


시. 갈대의 철학


채미가採薇歌


하늘 아래

두 성군 없고


땅 위에

두 사랑 없네


속세의 채미도

저승도 아닐진대


이승을 떠나

한 몸이 되어간다 한들


기나긴 세월에

무수한 돌탑만 쌓아 올린들


덧없는 허송세월에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땅과 하늘이

변함이 없거늘


뫼속에 묻혀

채미에 묻어나는

보잘것 없는 손과 발만 안스러워라


구르는 돌에 사연을 달지 마라

발길질에 이리저리 차이고 얽매이다 보니

세상의 모난 것도 둥글게 변해가느니


구르는 돌을 함부로 밟지 마라

밟고 지나 가는 낙엽 밟는 소리보다 못 미더워도

구르는 돌은 아파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금오산 오르는 길에

만나는 인연들이

수구 한 돌탑의 업보 된 인겁人怯을 쌓았네


사연도 많아

사랑도 많아

여기저기 이구동성

구르는 돌에 사연을 싣는다 한들

오지 산간 두메산골에 채미를 뜯는다 한들

돌아올 사람은

언젠가는 기약 없이 돌아오고

돌아오지 못할 사람 앞에 기다림은

오랜 영겁 永劫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와 같네


이야기 앞에 사랑 탑도 쌓아가고

지나온 이야기에 그리움 또한 켭켭이 쌓이니

사연들이 무엇이길래

탈도 많아 또 무너지나 싶더니

올라오는 내 내 굴러다니는 돌들에

이리저리 발길에 치이는 것도

연 된 업보에서 시작되었구나


새벽을 머금고 떠나온 이 길에

꽤 낯설지가 아니한 것이

돌아올 길이 있어서도 아니요


그렇다고 못다 핀 한 사랑이

기다려지는 것 만도 아닐진 데


오르지 못할 기다림에

내려오지 못할 그리움에 사 묻혀

사랑타령 한번 못하는 마음을 곁에 두고


떠나갈 마음에 회한 悔恨의 정한을

늘 염려해두는 것이

곧 이 길을 나서는 마음이 다가가서이며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 소이다


더디 가는 발걸음에 책망을 보태고

채미정採薇亭으로 발길을 옮겨 가는 것은

떠나 올 때

저 멀리 일출 떠오르는

문경새재 길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현월봉에 님 그림자 지우려는 것도 아니오


금오산 입구 도착

나를 반기며 기다리는 마음이야

대청에서의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과 도 같을까면서도


사랑을 위해

달려온 것도 아니오

기다림이 있어

떠나온 것도 아니오

남쪽의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하려 온 것도 아니었다네


오르는 내내

대오 정렬 앞에

그날의 빗장이

쉬이 열리리라 하기까지


영흥정靈興井 올라

여기가 어디 메인 지 둘러보고 또 둘러보아도

사람만 쉬어가는 곳도 아니었고

가라 하면

영영 여기서 머물 터인가


영흥 정에 들려

목마른 그리움에

물 한잔에 축이고 나니

어느새 해운사海雲寺에 다다르고


옛 선사는 어디 가고

시 만홀로 남아

이 깊은 두메산골을 지켜왔나 말이더냐


도선굴道詵窟에서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자


현월봉懸月峯 달 떠올라

운무 속 네 모습 감춰질세라

한참을 바라보고 넋없이 또 바라보네

홀로 외로이 이 깊은 산속

약사암藥師庵의 암자만이

홀연히 지키고 있는 것도

변방에 깊은 숨은 뜻을 감추려 함인지


두 임금을 섬기기 싫어 셨던가

옛 임금을 불러주는 이가 없어 떠나야만 하였던가

현월봉의 극락조에 까마귀 울어 지칠 때

현월봉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도선굴에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이 깊은 산속에 은둔한 채

야은 길재는 어딜 가고

채미만이 봄볕에 무성하기를

애태웠어야만 하였는지


오랜 세월 강산도 변했거늘

너의 마음이 변하기를 기대었어야 하는지

마음 달래 볼길 없는 마음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는구나


춘삼월 이 곳에도 봄이오니

채미정 따뜻한 고운 햇살 들이치고

뜰에 산수화 곱게 필 때

나를 반기는 이를 앞서 마중하리라


2017.3.19.금오산 현월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