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악의 언덕
마음의 언덕(치악산 가는 길)
- 치악의 언덕
시. 갈대의 철학
오늘 하루는 치악을 전세내고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은
기상과 동시에
치악 향로봉 황선이 떠오르기 전
가벼웁게 강변 산책길에 몸을 털고
한 시간은
치악 향하는 버스의 순항을 기다리고
준비된 마음의 시간과
떠날 등산 배낭에게
오늘 하루 잘 부탁함세 하며
질통에게 고마움도 표현하고
한 오 분 동안은
버스 전광판에
41번 치악산 구룡사 가는 버스 언제 오려나
버스 놓칠세라 초조함도 뒤로 감춰보고
멀뚱멀뚱 멍 하늘 바라보듯
시선은 사팔뜨기가 되어 가도 좋다네
한 시간은
버스에 올라 5월이 익어가며
들녘과 신록이 물들어가는
치악 토끼봉 8부 능선길 멀리 내다보이는
치악 공룡의 끝이 어디 메인지
42번 국도길 따라 달리는
버스 창가에 기대며 지나서다 보면
한가로이 풀 뜯는 소에게 물어볼까 봐도
어느새 마음은 풍경 삼매경에 빠져든다
떠나온 지 45분
버스길 접어들어 가는 이 길에
어느새 나를 반기며 안아주는 것이
비단, 신록만도 아니며
옛 계곡길 따라 이어지는
아침 햇살에 온몸을 내 맡겨 보기도 한다
구룡계곡 길 넘나들고
구중궁궐 대들보에
주춧돌 초석은 아직도
세월이 변해도 건재하건만
금강송 곧은 의지와 기개를 품었는데
조선왕조 5백 년 위엄은 어딜 가고
역사의 기둥뿌리가 되었는가
세렴폭포 다다르고
마주 대하며 가파 지른 암반 위 계단들
즐비하다 말 못 할 정도의 악연이 있었는가
넋을 잃고 아침 산책길을 나서는 마음이
평화스러웠었는지
아직 갈길 먼 오르막의 위안이 되었는가
처음과 끝이 어디쯤인지
구룡사 비로봉 오르는 길에
산이 높아서
봄비에 젖지 않아서
진달래가 떨어지고 난 후
초록의 만삭을 기다릴 텐가
암반 위에 핀 진달래
누구를 애타게 찾아 기다리는가
누구를 그토록 애닮 게 그 앞을 서성이게 만드는지
꽃다운 나이에 꽃이 피어나는 것을
가히 청춘이라고 불러본들
네 자취는 구름에 덮이고 바람 불고 비 내리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산의 능선 높이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이 다를진대
어이 그 높은 곳에 일송정 마냥 서있는지
치악의 언덕은 마음의 언덕이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정상에서의 부는 바람이 아니어도 좋다
내 피어날 때 이미 신록은 점점 푸름을 간직하고
너 떨어질 때 이미 내 몸에 잎이 나기 시작하였다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림의 완주가 가능할까
어설픈 네 모습에 살짝 드리운 신록 햇살에
너의 모습은 하산길에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구나